오리알에 대한 추억

by 권태윤

닭의 알, 달걀은 자주 말썽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달걀을 낳는 닭이나 달걀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말썽입니다. 죄수인양 갇혀 죽도록 알을 낳기만 한 닭이 무슨 잘못이던가요. 알이 안 팔려서 ‘알부잣집’ 아들들이 온통 울상이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어릴적 집에서 키우던 닭이 더러 달걀을 낳으면 대부분 어른들 차지였습니다. 제일 어른이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다음 아버지와 어머니, 그 다음이 형들이었습니다. 장유유서(長幼有序)는 험한 일을 하는 데서도 있었지만, 먹는 것에도 매한가지였습니다. 어른들 밥상에 남은 김과 계란을 먹기 위해 숟가락만 열심히 빨며 기다리다가 마침내 어른이 수저를 놓으면 굶주린 닭이 모이를 쪼듯 달려들었었습니다.


달걀맛 보다는 오리알 맛을 많이 보고 자랐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오리를 여러 마리 키우셨습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의도하지 않게 ‘동물복지’에 충실하셨는데, 우리도 없이 그냥 방목을 하셨습니다. 별도로 모이를 주지 않아도 오리들은 하루종일 들로, 냇가로, 논으로 싸돌아다니며 잘도 자랐고 알도 잘 낳고 번식도 잘했습니다. 단점은 너무 말썽을 많이 피운다는 것. 아이로 치면 거의 통제불능 상태였는데, 논밭을 헤집어 쑥대밭으로 만들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신통방통하게 밤만 되면 집을 찾아와 마당에서 잠을 자고 알도 낳았습니다.


덕분에 삶은 오리알도 자주 먹었습니다. 오리알은 크기가 달걀의 배가 됩니다. 한 두 개만 먹어도 배가 불렀습니다. 문제는 소풍 때도 어머니가 늘 삶은 오리알을 싸 주셨는데, 그게 참 부끄러웠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노란 달걀을 내놓는데, 나만 허연 오리알을 내놓으니 민망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오리알을 잘 먹어줬습니다. 오리알이 고혈압에 좋다는 이야기는 어른이 되어서야 처음 들었습니다.


그때 살던 마을에서 오리를 키운 집은 우리집이 유일했습니다. 다른 동네서도 잘 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몇 년 전쯤에 소풍 때 삶은 오리알을 싸줘서 창피했단 얘기, 왜 우리만 오리를 키웠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더 어릴 적의 사건 하나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나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건’입니다. 쇠약해진 시어머니 몸보신을 위해 어느 날 오리 한 마리를 푹 고아 놓았는데, 그 냄새에 정신을 잃은 나와 동생이 양은솥에 삶아놓은 그 오리를 몰래 다 뜯어먹은 일입니다. 그때 어머니가 많이 혼내셨는데, 그 일이 가슴에 사무쳐 오리고기라도 배불리 먹여야겠다고 생각해서 시골로 이사와 키우게 된 것입니다.


오이알을 먹지 않은지 오래 되었습니다. 지금도 오리들은 여기저기서 알을 낳고 있을 것이습니다. 어미오리의 새끼오리인 나는 어미를 잃고 타향에서 말썽피우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습니다. 달걀이건 오리알이건, 알들에는 숱한 사연들이 들어 있습니다. 고혈압을 낮추는 행복한 추억들도 가득 들어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오리알을 자주 삶아주시던 어머니는 아들만 여섯을 두셨습니다. 오리알 삶던 아낙이 진정한 ‘알부자’가 되셨으니 소원성취 하셨다고 해야 할까요? 건강한 ‘알’노릇, ‘아들’노릇 제대로 못했으니 그저 죄송스런 마음 뿐입니다.


9월이 코 앞이지만, 말없이 비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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