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없는 정의는 조롱당한다”

by 권태윤

만약 이웃집이 살상용 수류탄을 여러 발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게다가 주인의 성질도 사납고 막무가내입니다. 수시로 내 가족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겠고 협박합니다. 그런데 나는 수류탄이 없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칼, 몽둥이 따위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먼 곳에 사는 친구네는 수류탄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가끔 “그 사나운 이웃집 사람이 만약 너의 집에 수류탄을 던질 경우, 내가 대신 그놈 집에 수류탄을 던져 복수해 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 그냥 안심이 될까요? 게다가 이웃에 그보다 더 덩치가 크고 사나운 자들이 수류탄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협박한다면 어쩔건가요.


상대방과 다른 수단과 방법으로 수행하는 작전에 사용되는 장사정포, 생화학 무기, 핵무기를 비대칭 무기(Asymmetric Weapon)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상대방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는 우리에게 가장 위협적인 비대칭 무기입니다. 재래식 무기가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고 그 종류가 많다고 해도 핵무기와는 상대가 안됩니다. 북한이 형편없는 재래식 무기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큰소리치는 이유는 핵무기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부잣집에 아무리 많은 ‘연장’을 가지고 있서도, 가난한 집 수류탄 몇발 보다 못한 셈입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신생 독립국이 됐을 때만 해도 옛 소련이 보유했던 핵무기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176개의 핵미사일과 1천800여 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이었습니다. 하지만 1994년 미국, 영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4개국이 체결한 부다페스트 협정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기로 했고 그 대가로 안전보장을 약속받았으나, 이 안전보장 약속은 결국 허무하게 깨졌습니다.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서기는 지난 2018년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핵무장 포기는 우리의 역사적 실수였다"고 탄식했습니다. 1990년대 재임시절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했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최근 아일랜드방송협회(Raidio Teilifis Eireann)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우크라이나)이 핵무기 포기에 동의하도록 설득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책임을 느낀다”면서, “우크라이나가 계속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러시아가 이 같은 어리석고 위험한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후회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굳건해진 한미간 안보동맹에도 불구하고, 북핵에 대한 국민의 공포심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트럼프가 재선되고,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인상 압박과 주한미군 철수 운운하는 목소리에 국민의 불안과 분노가 높아지는 형국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해 조사된 여론조사들에선 자체 핵무장에 찬성하는 국민의 비율이 과반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북 협상을 담당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부 장관도 “더 견고한 민수 원자력 능력이든, 더 나아간 복잡한 핵 프로그램이든 한국인들이 어떤 핵 능력을 증진하기로 결정한다면 미국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며 “한국의 북쪽에 고도화된 핵무기 국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편이 한국인들에게는 합리적인 일일 것 같다”고 까지 했었습니다.


문제는 갈수록 미국의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만 상대해도 벅찬 미국 입장에서, 북한의 핵 도발에 직접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우리 역시 북한뿐만이 아니라, 가공할 숫자의 핵무기를 보유한 중국과 러시아의 핵 도발 가능성에도 대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핵무장을 하는 방안은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방법도 있고, 미국의 핵무기를 재배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핵 주권 차원에서 본다면, 미국 핵무기의 한국내 배치는 핵무기 운용에 대한 우리의 주도권이 없다는 점에서 문제입니다. 적어도 핵 공격을 받는 즉시 즉각적인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수준까지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핵연료 재처리와 일정비율 이상 우라늄 고농축을 허용할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군 당국이나 정부가 자체 핵무장에 선뜻 나설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국제사회의 제제를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그동안 자국의 주요 국익 측면에서 도움 되는 국가의 핵무장을 허용해주거나 지원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핵무장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의 지원 덕분이었고, 이스라엘이 핵무장 할 수 있었던 것도 페르시아 걸프 지역에서 석유를 통제하는 국가의 부상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미국이 인도의 핵무장을 허용해준 이유 역시 중국의 세력 팽창을 저지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와 무관하게, 자체 핵무장이 우리 정부의 선택지 안에 있어야 주권 국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상대의 말만 믿고 의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대한민국의 독자적 핵무장이 미국의 이익과 안보, 세계평화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점을 잘 설득한다면, 제제를 당하지 않고서도 핵무장을 할 길은 충분히 열려 있다고 봅니다.


“칼 없는 정의는 조롱당한다”며 “미국은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는가? 핵무기 없는 나라는 진실로 독립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외치던 드골 대통령의 결기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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