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국가’의 종말

by 권태윤

북한이라는 ‘가족국가’의 일원인 김여정은, 지난해 10월 12일 야심한 시각에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이란 것이 별것 아닙니다. 늘 해오던 ‘겁박’이요, 늘 반복해 오던 ‘내로남불’이요, 늘 해오던 ‘적반하장’이요, 늘 해오던 ‘덤터기 씌우기’였습니다.   


김일성으로부터 시작된 3대 ‘가족국가’의 본질은, 황량한 사막에 오직 자신들만의 성채(城砦)만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북한 주민은 오로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그들 3대를 대대손손 옹위하고, 부양하며,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노예의 삶을 살아 왔습니다. 이런 괴이한 ‘가족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외부 정보의 차단, 지속적인 세뇌, 공포와 불안, 이렇게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라는 ‘가족국가’에서 외부의 모든 정보는, 철저히 통제되고 감시되며, 억압당합니다.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김정은이 ‘대한민국’ 국호를 공식 언급하기 전까지만 해도 남한의 발전상을 전혀 몰랐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심지어 대한민국이 ‘남조선’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외교관이나, 외화벌이를 위해 외국에 파견 나가서도 감시가 일상화된 상태에서 사실상의 감금 생활을 한 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중앙정보국(CIA)에서 심리전 선전 전문가로 일했던 에드워드 헌터 기자는, 중공군의 구금에서 풀려난 중국인과 서양인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그 결과 ‘외부에 잔악 행위를 드러내지 않고 수감자를 살아 있는 꼭두각시, 분별없는 공산주의 자동 인형, 이른바 인간 로봇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세뇌’라고 표현했습니다.


대를 이어 자기 가족만을 위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 방법은, 지속적인 거짓과 공포 분위기 조성입니다. 하다못해 갓 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은 자신의 고모부마저 고사포로 처형했습니다. 자칫 한눈팔면 불귀의 객이 되는 21세기 감옥, 그 극한의 지옥이 북한이라는 ‘가족국가’입니다. 북한 3대의 ‘가족국가’는 단 한 번도 앞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민을 겁주고, 속박하며 어두운 과거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전 세계 그 어디에도 없는 폭압적 ‘가족’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반성하지 않으면, 종일토록 남의 허물만 본다(不自反, 終日見人之尤也)’는 글이 있습니다. 청(淸)나라 위원(魏源)의 <묵고(默觚)>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김일성 3대는 전쟁과 공포로 수많은 동족을 학살해 왔으면서도 단 한 번도 반성하지도, 속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남한은 그저, 거짓과 공포를 이용해 돈을 뜯어내는 ‘호구’ 정도밖에 아니었던 셈입니다. 그들에게 농락당해 돈도 잃고, 명예도 잃고, 자존심도 잃은 자들이 우리 사회 고위층에도 적지 않습니다.


김정은 남매의 언사가 갈수록 거칠어지는 이유는, 북한 내부에서 민심이반 조짐이 있고, ‘가족국가’ 내부의 혼란이 감지되는 장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날마다 패악질을 일삼는 가장(家長)이, 툭하면 만만해 보이는 옆집 사람들을 겁박하는 행태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김일성 3대 ‘가족국가’가 한계에 이를 때 북한이 도모할 수 있는 수작이 ‘미친 개 전략’입니다.


우리 국민, 여야가 한마음으로 뭉쳐서 ‘미친 개’에게 진짜 몽둥이를 들 수 있는 결기를 보여줘야 합니다. 우려되는 한 가지는 우리 내부의 적입니다. 내부를 향해 총질하는 비난 세력은 외부의 적보다 위험합니다. 북한의 주장과 공세에 부화뇌동하며 내부를 공격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반국가 세력’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남북간 평화를 이룰 의지가 있다면, 지금도 변함없이 김정은에 대한 깊은 신뢰를 표시하는 사람들, 돈으로 복한정권의 환심을 사려는 자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평화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북한 주민이 마음을 사야 가능한 일입니다. 남한사회에 대해 제대로 알고 체감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진실에 눈뜰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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