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間의 가족사

by 권태윤

■ 할아버지의 죽음

할아버지는 뒤늦게 외동아들을 얻으셨다. 할머니가 아들을 낳다 돌아가신 탓에 할아버지는 동네를 다니시며 젖동냥으로 핏덩이 아들을 키우셨다. 혼자서 아들을 키우기 힘드셨던지 딸 하나를 데리고 새로 시집오신 할머니와의 사이에 딸 하나를 더 낳으셨다.

할아버지는 6.26가 한창이던 어느날 논에 물을 대러 가셨다가 10여 명의 빨치산들에게 잡혀 현장에서 참혹하게 즉사하셨다. 그들은 삽과 낫, 곡괭이 따위로 집단 구타를 했다고 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어서 흔적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부서진 뼈와 갈갈이 찢긴 베옷 쪼가리들만 논두렁에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찌어찌 그 참혹한 현장을 찾아 뼛조각 몇 개와 피묻은 옷조각 얼마를 수습하여 가매장을 했다고 하셨다.

그때 할아버지 나이 43세였다. 다행히 16세였던 아들은 동네에 살던 친구의 18세 딸에게 장가를 보내고 난 뒤였다.


■ 할머니의 죽음

아들을 따라 영주로 이사와 살던 할머니는 어찌어찌 두 딸을 시집보내셨지만, 상한 음식을 아깝다며 드시곤 그만 식중독으로 돌아가셨다. 단 하루동안의 비극이었다. 할머니의 첫째인 큰고모는 두 딸을 낳은 뒤, 병으로 어린 외동아들을 잃어버리곤 오랫동안 실성하듯 사셨다.


■ 아버지와 고모 내외의 죽음

어미의 사람을 받지 못한 아버지는 자신을 젖동냥으로 키운 아비를 잃은 뒤 술에 의존하며 고통을 달랬다. 아들을 일곱이나 낳았지만 하나를 잃고, 단 한 명의 자식도 결혼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급성폐렴을 얻어 45세에 돌아가셨다. 아침에 병원 가신다고 가셔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사망한 상태로 귀가하셨다. 얼마 뒤 작은고모도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돌아가셨고, 아내 잃은 고통에 눈물짓던 고모부도 곧이어 고모를 따라가셨다.


■ 동생과 형의 죽음

바로 및 남동생이 내가 국민학교 입학하던 날 따라나왔다가 ‘바람(?)’을 얻어 며칠을 앓다 통곡허는 어미 품에서 숨을 거뒀다. 동생의 나이 여섯 살이었다. 바로 위 형은 지하철 공사장에서 발파작업을 지휘하다 화약 폭발로 현장에서 즉사했다. 형의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결혼을 일찍 한 덕분(?)에 아들 하나를 두셨다.


■ 어머니의 죽음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늘 강인해 보이시던 어머니. 감기 기운이 있어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폐암말기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모든 치료가 무의미하다며 ‘한달’을 선고했다. 어머니는 두어달간 호흡을 힘들어하며 고통받으시다 끝내 숨을 거두셨다. 나는 직장을 다니느라 어머니의 운명 순간도 지켜보지 못했다.


■ 큰형과 둘째형의 죽음

큰형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 40대에 대형트럭에 머리를 다쳐 5세 아이가 되어 버렸다. 어린아이처럼 살다 10여 년을 병실에서 드러누워 눈만 깜박이다 돌아가셨다. 결혼 실패 이후 혼자 살아가던 둘째 형은 당뇨까지 심해져 날마다 병원을 드나들며 신장투석을 받았다. 수술을 앞둔 어느날 걸어서 병원을 가다가 저혈당으로 길바닥에서 혼절하여 사망하였다.

아들만 7형제이던 부모님의 자식들 중 넷을 잃고 이제 셋째인 나와 두 동생만 남았다. 그런데 바로 밑 동생도 올해 대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중이다. 가혹하고 잔인한 운명이다.


■ 장모와 장인의 죽음

지극정성으로 남편 보살피던 장모는 모아둔 돈 써보지도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고뇐 농사일과 과로 탓 아니었을까 싶다. 장모님 잃고 스스로 요양병원으로 들어가신 장인은 허리 고질병과 술로 지세며 여러 병원 전전하시다 며칠 전 눈을 감으셨다. 8남매를 두셨으니 그나마 다행일까. 미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는 막내처남은 끝내 아비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 메모의 이유

태어나 숱한 죽음을 맞이 했다. 어느 순간부터 무덤덤한 일상이 되었다. 그들이 갔듯 나도 갈 것이다. 돌아보니 지난 세월이 하룻밤 꿈만 같다. 죽음을 지켜보는 시간은 마치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처럼 너무도 일상적이었다.

참으로 부질없는 것이 인생사란 것을 새삼 절감한다. 아직 60도 되진 않았지만, 집안에서 나는 아주 장수하고 있는 축에 속한다. 삶과 죽음의 일상적 흐름, 인간의 죽음과 일상에 대해 글로 적어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 대략의 순서나마 적어두려는 것이다.

인생사 한순간이니 자식 괴롭히지 말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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