落詩(낙서 또는 詩) - 72

by 권태윤

남자 -


눈으로만 걸어오던 계절이

온몸으로 거칠게 파고들 때,


피부로만 기어오르던 사랑이

가슴으로 저릿하게 먼저 올 때,


사막의 요새처럼 말랐던 눈시울이

장마철 비가 새는 처마로 변할 때,


꽃과 풀을 구분하지 못하던 무심함이

들꽃 한 송이에도 속절없이 무너질 때,


외면하던 아내의 허리가

세상에서 가장 푸근한 안식처라 느낄 때,


아이들의 못난 모습만 보이던 눈이

무한한 관용과 이해의 시선으로 변할 때,


어설픈 수컷은

비로소 진짜 사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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