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Zombie)와 파수꾼

by 권태윤

좀비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그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좀비에게 물려 같은 좀비가 되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하지 않을까 하는.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인체로 좀비가 우글거리는 세상에 산다는 것은 단지 생각만으로도 지극히 공포스럽습니다. 극도의 불안, 공포를 매순간 견디며 ‘좀비가 아닌’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상일까요. 그러느니 고통을 자각할 수 없는 좀비 무리로 사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이미 집단과 대중이라는 ‘좀비’들의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좀비의 일원일지도 모릅니다. 몰개성과 군중심리, 편향된 사상과 이념, 집단적 무지와 몰상식 따위의 비이성적 상태에 병든 무리들이 널린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온전한 이성을 갖춘 비판적 개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좀비 무리를 피해 다니며 이성적 인간으로 버티는 삶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어떤 집단이 무지와 착각으로 이성적이지 못한 그릇된 판단에 경도됩니다. 이때 자신의 안위를 걸고 ‘아니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집단은 이미 좀비들에게 점령당한 집단입니다. 그 집단의 논리에 함께 섞이고 동조하면 일신(一身)이 편할 수 있겠지만, 과연 깨어있는 인간으로서 행복할 수 있을까요.


위험, 불안, 공포에 대한 경계는 ‘파수꾼’이 운명적으로 지녀야 할 자질(資質)입니다. 깨어있는 온전한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집단과 무리에 동조하며 사는 삶은 일순 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개인이 가진 신호등을 끄고 광란의 질주극에 동참하는 것은 비이성적 삶, 곧 좀비의 생존방식에 순응하는 것과 같습니다.


해서 깨어있는 삶은 늘 위험, 불안, 공포가 보내는 신호에 귀를 쫑긋 세워야 합니다. 무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온 밤을 뜬눈으로 지새울 줄 아는 파수꾼의 자세를 지녀야만 합니다. 남들이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뜬 눈으로 민족과 조국의 운명을 고심하는 민감한 영혼을 가진 자, 그가 바로 진정한 리더이자 어둠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그대는 좀비인가요, 파수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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