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미스(Steven B, Smith)의 <정치철학>을 읽다 문득 ‘지금의 대의(代議)민주주주의 시스템의 소멸시효는 과연 언제까지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실 지금과 같은 기술발전 속도라면 全국민의 의사(意思)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현은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울 수 있겠습니다. 지금의 기술력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직접민주주의의 구현은 이제 인구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지금의 대의(代議)민주주의는 곧 직접민주주의로 대체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포는, 역설적으로 그런 시스템이 가능하게 한 '기술' 때문입니다. 만약 인간에 의해 구현된 기술이 국민 개개인이 직접 표현하는 비밀스런 의사까지도 모두 알게 된다면, 그것은 새로운 빅 브라더에 의한 암울한 공포의 시대가 왔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비밀투표는 사라지고 사실상 공개투표가 된다면, 도리어 민주주의는 시궁창에 처박힐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생각과 양심의 비밀공간이 빅 브라더에 의해 수시로 열람되고 통제될 수 있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공포스럽습니다. 보다 강력한 보안기술, 비밀의 봉인을 풀 수 없도록 하는 기술 역시 이내 다른 새로운 기술에 의해 무장해제될 것입니다.
우리 국회만 보더라도, 전자투표가 도입된 지금도 인사(人事)와 관련된 안건은 장막 뒤에서 직접 수기(手記)로 의사를 표기합니다. 개인의 표결내용을 확인할 수 없도록 하는 아날로그 방식이지요. 어쩌면 이런 방식이 정보의 유출, 생각의 해킹을 차단하는 가장 강력한 보안장치일런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기술을 토대로 한 직접민주주의 방식을 새롭게 대체 또는 보완할 수 있는 그 다음의 시스템은 어떤 것일까요? 어차피 인간이 자주적(自主的)으로 판단한 것으로 여기는 여러 가지 결정 역시 신문과 방송, 표본과 통계의 조작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오염된 것입니다. 100% 순수한 자기결정이란 사실상 존재할 수 없습니다. 대의민주주의 보다 민의를 더 충실히 담아낼 것이라 여겨지는 직접민주주의 역시 그만큼 허술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새롭게 구축해야할 체제는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어쩌면 다음 세기(世紀)의 인류는 AI의 꼭두각시가 되어 그들의 종노릇이나 하고 살 런지도 모릅니다. 혹성(惑星)이 아닌 지구에서, 그것도 생명체가 아닌 기계라는 존재에게 부림을 당하는 인간의 종말적 미래는 과연 상상의 영역에 머물 뿐일까요? 사람이 보다 사람답게, 보다 자주적으로, 보다 민주적으로 이 지구라는 별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체제는 과연 어떤 체제일까요?
자잘한 영역의 보살핌과 고민도 필요하겠지만, 우리 스스로 새로운 미래에 적합한 체제를 탐구하고 현실 속에서 그것을 구현해 내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학자나 정치인에게만 맡겨두기엔 다가오는 미래가 너무 칙칙하고 안개속입니다. 그래서 미래는 기대와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