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살아오면서 세 번가량 ‘헌책’을 고물상과 중고 서점에 내놓았었습니다. 각각 500~600권 가량을 세 번에 걸쳐 버리다시피 했는데, 그때 각각 받은 돈이 1만5천원, 1만3천원, 2만원 이었습니다. ‘버린’ 책은 총 1500여 권이 됩니다. 이들 책은 전부 서점, 인터넷 등을 통해 ‘새책’으로 구매한 책들입니다. 시간이 지나 가치를 판단해 선별해서 고물상이나 중고서점에 보낸 것들입니다.
항상 새책을 구입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책을 빌리면 낙서(메모)를 할 수 없다는 것, 빌려오고 반납하는 절차가 귀찮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책을 구입하면 온전한 ‘나의 책’이 됩니다. 절반쯤 읽다가 생각보다 못하면 꽂아뒀다가, 나중에 다시 읽으면 진정한 책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끔 산에 가면 나무나 숲이 주는 느낌이 그때마다 다르듯, 책도 역시 던져두고 있다가 다시 읽으면 새로운 표정으로 다가옵니다. 책들은 그때마다 새롭고 기분 좋은 시간을 선물해 줍니다.
얼마 전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몇달전 중고서점에 2만원을 받고 넘긴 600권 중에 한 가지를 구매해서 읽은 분이 메시지를 보내온 것입니다. 책을 사면 구입한 장소와 일시,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는 습관이 있는데, 같은 습관을 가진 분이 책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신기해서 연락을 해오신 겁니다. 밑줄도 그어져 있는 그 책을, 그분은 1만 원에 구입했다고 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600권을 2만 원에 넘겼는데, 그중 한 권을 만 원이나 주고 사셨다니 말입니다. 대부분 두껍고 무게감 있는 책들인데, 그 책은 상대적으로 페이지 수가 많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아, 주인 잃은 강아지도 좋은 주인을 만나야 하듯, 버려진 책도 좋은 주인을 만나면 제값을 받을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저도 몇 년 전에 20년 전의 책을 헌책방에서 구입한 적이 있었습니다. 절판되어 없는 그 책을 찾다가 겨우 중고서점에서 찾았는데, 20년 전 6만 원이던 그 책을 30만 원에 어렵게 샀습니다. 그때의 기분은 참 흥분되고 신났던 기억이 납니다. 간절히 찾던 절판된 책을 손에 쥐는 순간은, 마치 이별했던 연인을 다시 만나는 순간처럼 묘하게 떨려 몸에 열이 나게 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버려졌던 책이, 누군가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돌아보니 책을 너무 쉽게 버린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한 권을 만원이나 주고 구입했다는 ‘그’의 자랑에 놀란 탓인지, 아니면 몇 번 더 읽을 수 있는 것들을 너무 일찍 버런 것은 아닌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가끔씩 많은 양의 책을 버리게 된 이유는 집이 너무 좁아서입니다. 아내는 안방과 두 아들의 방 각각 세 곳에 겹겹이 쌓인 책들을 늘 갑갑해 했습니다. 4면의 벽을 책으로 가득 쌓아놓은 방들은 자주 먼지들로 가득해집니니다. 너른 집으로 이사를 가야만 해결되는 문제인데,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집안에는 많은 책들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만, 틈만 나면 서점과 인터넷을 통해 읽고 싶은 책들을 찾아 사냥하듯 다닙니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많은 책을 소유하고 읽어도, 지구상의 그 책 중 몇분의 1을 읽을 수 있을까요. 어쩌면 부질없고, 무모한 습관이란 생각도 듭니다. 나이 들면 자꾸 버려 집을 비우고, 몸을 비우고, 마음을 비워야 인생길이 가벼워진다고들 합니다. 가만 생각하면, 서로가 읽던 책들을 사고팔기보다는 물물교환을 하듯 서로 바꿔서 읽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돈도 적게 들겠지요. 물론 그렇게 하는 방식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방식과 같겠지만, 시간에 쫒기듯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진 않다고 여깁니다. ‘책을 교환하는 사람들’이란 이름의 블로그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분’이 선뜻 그 헌책을 구입해서 읽었고, 그 신기한 경험을 공유해주신 것은 참 기분좋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헌책’이란 없는 셈입니다. 인간이 경험을 통해 성숙하듯, 세상의 많은 헌책들도 ‘숙성’의 시간을 통해 잘 익은 만큼 ‘묵은 책’으로 불러줘야 하겠지요. 정말 그 묵은 책을 교환하는 아름다운 장터를 열어봐야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가을엔 누군가에게 편지도 써야겠지만, 묵은 책들과도 친해지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