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의 운명

by 권태윤

버트란트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은 “전쟁은 나라가 굶주릴 때, 국민이 기아에 시달릴 때 나는 것이 아니고, 창고가 꽉 차있을 때 난다”고 했습니다. 이미 쓰라린 전쟁으로 서로에 대해 극심한 불신과 증오를 갖고 있는 남북한은 자주적 평화를 위한 지난 정부들의 다양한 교류에도 불구하고 상호 적대감 줄이기에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아픈 과거사와 북한의 숱한 도발에도 불구하고, 북을 무조건 무너뜨려야 할 호전적 깡패집단으로 규정하고 적대시하기에는 문제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습니다. 자국의 이익을 기준으로 정책과 전쟁을 결정하는 냉엄한 강국 중심의 논리 앞에서, 남북한은 여전히 함께 살아남아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주변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남북간 화해와 대화는, 남북 모두에게 공생을 위한 절대적 가치일 수밖에 없는 셈입니다. 이런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상황을 외면하고 힘의 논리만 강조한다는 것은 민족 앞에 닥칠 공멸의 위기를 방치 내지는 자초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두려움이나 공포는 공평한 것입니다. 두려움과 불안은 남북을 차별하지도, 인종을 차별하지도 않습니다. 전쟁의 아픈 기억과 공산주의의 잔인한 횡포를 경험한 전전(戰前)세대들의 불안과 공포도 그래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해방 후 공산주의자들로부터 테러를 당했던 당사자 집안이나,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빨갱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경기와 분노를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극대화된 두려움과 공포는, 사람이나 짐승 할 것 없이 자기 통제력을 잃도록 만들어버립니다. 게다가 한번 공포가 조건반응으로 형성되고 나면, 그것을 없애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런 공포와 두려움은 대한민국 국민만의 것이 아닙니다. 전쟁에 대한 공포나, 적대국에 대한 공포는 북한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북의 미사일 발사 실험이나 핵시설 가동 등 무력시위에 불안을 느끼듯, 미국의 정찰기가 자기들 안방을 손바닥 보듯 감시하고, 한미연합군이 수시로 대규모의 합동훈련을 벌이는 것을 보며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서로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평화를 위한 훈련이요 일상적 군사훈련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상대에게 주는 공포감을 줄여줄 순 없다는 사실입니다.


핵전략 용어에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란 말이 있습니다. ‘공포나 두려움을 통한 정치심리학적 작용에 의해 상대방의 행위를 제어하게 되는 상호억제체제’를 뜻합니다. 남북은 언제 무너질지 모를 균형을 위태롭게 유지하며 공포감 속에서 긴박하게 대치해 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서로를 끝없이 불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남북한 서로의 불안과 공포가 해소되어야만 화해와 평화통일이 가능하다는 너무도 단순한 조건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개인 간에도 서로의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상대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고, 서로 안심시켜 주며, 가지고 있는 각자의 감정이나 두려움에 대하여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불안과 공포만 없앨 수 있다면, 비용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쥐도 막다른 곳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때 쥐의 심리상태는 그야말로 공포가 극대화되어 마침내 ‘죽기 아니면 살기’가 됩니다. 한마디로 생사를 건 배수진(背水陣)을 치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정권이 행하고 있는 극단적 선택들은 정권 유지를 위한 마지막 발악일 것입니다.


영국의 철학자였던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는 “두려움이 결국 인간의 만인에 대한 무차별의 공격성으로 표출된다.”고 했습니다. 공존의 조건은 그것이 개인이건 국가이건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주어야만 가능합니다. 남과 북에는 우리의 자식과 부모 형제가 살고 있으며, 반드시 평화적으로 하나 되어 함께 번영해야 할 한 핏줄임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비록 크고 작은 희생을 치르더라도 인내하며 민족 공멸을 막기 위한 포용 정책의 지속은 우리의 의무이자 남북 모두의 운명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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