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계급사회 속에서 명령과 복종만 존재했던 왕조시대, 탄압과 굴종으로 점철된 일제시대, 이념과 사상의 대립이 극심했던 건국기, 생존을 위해 공포정치를 감내해야 했던 근대화 시기,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한 군사정치의 연장에 맞서온 민주화 시대를 거쳐 오면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참된 존엄성, 사람답게 살기 위한 차원 높은 꿈을 실현시키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첨단문명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 도덕성의 붕괴와 생명경시 풍조, 性의 상품화 등 인간성의 파괴와 그로 인한 말세적 징후들이 숱하게 발생하고 있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1968년 설립된 로마클럽(The Club of Rome)이 제출한 보고서나,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년(Nineteen Eighty Four)』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핵 위협 아래 놓인 지구촌, 인류의 양식(良識)과 이성(理性)을 의심케 하는 무분별한 군비경쟁과 `별들의 전쟁', 지구의 생태계를 파괴할 공해문제, 아프리카의 가뭄사태를 야기한 제 3세계의 위기와 오랜 제국주의 침략의 후유증, 감시와 통제의 사회상 등을 거론하며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굳이 종교니 철학이니 하는 차원이 아니더라도 21세기 우리사회의 참된 발전, 나아가 전 인류의 희망적인 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갈수록 심화되는 물질주의, 배금(拜金)주의, 기계화, 생명경시, 가공할 폭력 등 모든 인류 악을 제거하고, 새로운 희망을 일구기 위한 대안은 인간성의 회복과 인간다운 가치의 정립이며, 그것을 '인간화(人間化)'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제도와 종교, 국가와 시스템은 사람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하고 이것만이 21세기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희망을 담보하는 열쇠가 될 것이며, 최소한 유토피아(Utopia)는 아니더라도 현대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들이 극단화되어 초래할지 모르는 암울한 디스토피아(Dystopia)만은 막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일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제를 푸는 가장 우선적인 방안은 정치의 개혁입니다. 국가의 모든 정책을 수립, 집행토록 하는 것은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人間化', '사람중심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참회와 반성을 통한 정치병리 현상의 해결'이 급선무라는 생각입니다. 1948년 건국과 초대헌법의 제정 이래 우리정치는 발전은커녕 그야말로 '정치병리(Political Pathology)'의 악순환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간 헌법은 9회나 개헌의 운명을 맞았고, 민주주의의 견인차라는 정당은 선관위에 등록되었던 것만 해도 140여 개가 생멸되었으며 역대 대통령을 지낸 이들은 대부분 감금, 자살, 투옥 등의 신세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비극은 이뿐 아니라 우리 정치의 병리 때문에 국민정신도 엄청나게 멍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이렇게 밖에 될 수 없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지난 80여 년 간 우리의 정치가 무리, 파행, 정권붕괴, 새로운 헌법제정 등을 되풀이해온 근본적 원인은, 우리의 정치인들이 인간으로서의 의무보다는 권력자로서의 특혜에만 몰두했기 때문입니다. 권력에 눈먼 정치는 이미 진정한 민주주의, 사람을 위한 정치라는 본분을 수행할 의지를 상실해버리고 올바른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준비마저 하지 못합니다. 자연히 지난 80여 년간의 헌정사를 볼 때 걸핏하면 국회는 합리적 이성의 상실과 관용적 자세의 부족으로 정쟁만 있고 정치는 없는 현실이 계속되어 온 셈입니다.
특히 대결중심의 권력다툼은 '비판과 비난', '칭찬과 아부', '충고와 공격' 등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지난날의 권력자들은 올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을 '반역자'로 몰거나 심지어 '빨갱이'로 몰아서 극단적 보복을 가한 사례도 많이 있습니다. 이 모든 모순과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선결과제는 정치권과 국민 모두의 진지한 참회와 반성입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극도에 달해있는 상태에서는 참된 리더십이 발휘될 수 없고, 정부의 주장이 사람들을 감동시켜 하나로 결집시킬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권력쟁취와 권력 지키기에만 매달린 채 '술수의 정치'에만 골몰하고 있는 우리 정치권이 참된 자유민주주의, 인간중심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제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국민이 인내의 한계에 직면할 때 그 나라들이 어떤 운명에 처했는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