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살 때, 학교에 가려면 15리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버스가 다녔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아침 등교 길에 달리던 버스가 넘어져 논 바닥에 거꾸로 처박혔습니다.
나는 논 바닥에 거꾸로 처박힌 버스 지붕 제일 밑에 깔렸는데,
내 위로 겹겹이 학생들이 쌓였습니다.
특히 내 얼굴 위엔 어떤 학생의 엉덩이가 눌려 있어서 숨을 쉬지 못했습니다.
가슴과 배도 짓눌려 호흡이 어려웠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혼절 직전에 누군가 창문을 깨고 하나 둘 탈출하기 시작하면서 겨우 살아났습니다.
그날 나를 포함해 버스에 타고 있던 학생들은 모두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그 뒤로 수십년간 나는 폐소공포증을 앓았습니다.
많이 좋아진 지금도 어쩌다 만원 버스, 사람 많은 지하철을 타면 호흡이 가빠오고 식은 땀이 줄줄 흐릅니다.
호흡이 안돼 죽음의 공포를 느낀 적은 군대에서도 있었습니다.
훈련병 때 화생방 훈련을 하면서 너무 순진하게 시키는 대로 다 했다가 가스를 너무 많이 마셨습니다.
겨우겨우 밖으로 기어나와 호흡을 하려는 데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전쟁 나면 화생방전 중에 가장 무서운 게 화학전과 생물학전이란 생각을 절로 했었습니다.
방사능전은 그냥 눈 깜짝할 사이에 죽기 때문에 차라리 낫습니다.
어릴 때 강에서 놀다가 물에 빠져 죽을뻔 했을 때도 호흡이 안돼서 느낀 공포가 참 컸습니다.
어머니 폐암진단 받고 투병하실 때에도 호흡을 못해 몸부림 치시던 때의,
공포에 떨던 어머니의 그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태원 사상자들이 겪은 그 질식사의 공포를 감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생목숨을 잃은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