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화장실에서 뒤로 넘어져 허리를 심하게 다쳐 오래도록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지금도 궂은 날이면 그때의 통증은 약속된 손님처럼 잊지 않고 꼬박꼬박 찾아옵니다. 군대에서 스나이퍼(저격병)로 매일 300발 이상씩 실탄사격을 하면서 얻은 ‘이명(耳鳴)’은 수십년이 지나도록 귓속에 터를 잡고 눌러앉아 매미소리를 들려주며 살고 있습니다. 역시 군에서 산악구보 중 입은 발목 부상은, 날이 갈수록 강원도 양구의 가파른 산등성이를 또렷하게 상기시켜 줍니다.
한주 전에는 회의실 탁자 다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통증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119 불러서 응급실로 갔습니다. 마약성 진통제 주사를 연달아 5봉지나 맞고서야 겨우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계속 통증이 심해 병원을 오가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는 왼쪽 어깨에 심한 통증이 밀려왔었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병원에 갔더니 石化증상이 있답니다. 주사도 맞고 초음파로 부수고 그럽니다. 수면장애는 십 수 년 전부터 있었는데, 7년 전부터 수면센터에 가서 진료를 받고 날마다 전투기 조종사 마냥 요상하게 생긴 것을 얼굴에 덮어쓰고 숨을 쉬는 ‘양압기 치료’란 것을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늘 괴롭던 불쾌한 두통이 사라지고, 무겁던 몸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잊고 살았던 통증들이 좀비처럼 살아나 아우성을 치고, 새로 몸 여기저기 고장이 나면서 이런저런 통증이 친구하자며 친한 척 달려듭니다. 기계가 낡으면 이런저런 고장이 나듯 사람도 연식이 쌓이면 여기저기 고장이 납니다. 늙으면 지출되는 돈의 70% 이상이 병원비요, 노인은 ‘병원의 저금통’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장인어른 말씀이 새삼 생각납니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늙어간다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상처와 통증이 이렇듯 슬픔의 江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인생이 주는 멋진 훈장이라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상처와 고통은 삶을 괴롭히는 흉기가 아니라, 어쩌면 노년의 삶을 더 성숙하게 만드는 좋은 친구이기도 합니다. 내가 아파보니 타인의 고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공감하는 마음도, 깊고 쓰린 상처와 고통으로 인해 금방금방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살기 위한 과한 욕심, 재물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차츰 덜어내게 한 도구도 상처와 고통이 준 선물이었습니다. 유한(有限)의 인생을 일깨우는 고통이라는 거울을 삶의 공간 곳곳에 세워둡니다. 자연 무욕(無慾)의 행복이 곳곳에서 얼굴을 내닙니다. 이마에 새겨진 깊은 주름이 인생의 훈장이듯, 마음과 몸속에 깊게 새겨진 고통과 상처 또한 세월이 우리에게 주는 빛나는 훈장입니다. 고통과 상처를 벗 삼아 함께 늙어가는 삶은, 그래서 외롭지도 억울하지도 않은, 담담하고 느긋한 여행길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