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의 딜레마(진퇴양난)'란 말이 있습니다. 범죄혐의가 있는 두 명의 용의자를 각각 독방에 분리 감금해 심문을 하면, 서로 대화를 할 수 없는 이들은 결국 상대의 증언에 따라 자신이 불리해질 것을 의심해 상대를 불신하여 죄를 고백하게 되고 결국 무거운 형량을 받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두 용의자가 서로 협조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면, 즉 의리가 있고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행동에 대한 결과를 미리 논의할 수 있었다면 서로 좋은 방향으로 합의해 자신들 모두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란 것입니다. 이 말은 결국 서로 신뢰하고 의논하면 분명히 이익이 돌아오지만 대화가 불가능하고 서로를 불신하는 상황에서는 양자 모두가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노사간 대결이나 개인간 쟁송, 남북간 군비경쟁 등 모든 문제와 갈등은 이해당사자간 대화의 부족과 신뢰의 부족에서 발생한다는 것인데, 특히 고소와 고발, 비방과 폭력으로 얼룩진 넌덜머리나는 우리의 정치판을 보면 더욱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우리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상수’는 버려버리고, 서로가 비난과 비방, 고소고발이라는 하수의 다툼으로 날을 새고 있습니다. 법을 만든다는 입법부가 사법당국에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날마다 고소장을 제출하는 멍청한 짓거리를 바라보는 것도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여야는 거리상으로는 불과 몇십 미터를 두고 중앙당사를 마주하고 있고, 국회의사당에서 늘 지척에서 만나지만, 각자 아집과 독단의 견고한 성을 쌓고서 대결과 싸움으로 날을 새고 있으니 가뜩이나 고통 받는 국민은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고 분통만 터뜨리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서로를 의심하고 비난하며 자신들이 살 길만을 궁리하니 만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상대를 극도로 불신하고 증오하며 적으로 생각하고 승리하려고만 하니 눈에 뵈는 게 없는 것입니다.
역사드라마를 보면, 어느 드라마나 할 것 없이 민생은 제쳐두고 서로 자신들의 이득만을 위해 모략중상하고 비방하는 권력층들의 더러운 싸움질로 난장판인데, 21세기라는 지금도 우리정치는 역사에서 배우기는커녕 추악한 싸움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정치가 나라사람을 얕보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나라사람을 위한 정치라면 적절한 의사소통과 신뢰를 형성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 건강한 대화는 365일 항상 열려있어야 합니다. 대화가 없이는 갈등의 극복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당의 존립목적이 정권획득에 있고, 대통령이란 직책이 결코 나눠 먹을 수 없는 단 하나의 자리라곤 하지만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정치 역시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서로 머슴이 되겠다는 자들이 상전인 주인을 장기판의 졸(卒)로 보고 소득 없는 악다구니만 쓴다면 이것을 두고 어느 누가 그들을 진정한 일꾼이라고 하겠습니까. 나라사람들은 정치권에 대해 서로가 완전한 하나가 되라고 주문한 적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나라사람을 위한 소득 있는 정치가 되기 위해 상대를 때로는 합리적 반대자이자 동지로 여기라고 주문하고 싶습니다.
뻔한 말이지만, 국회는 공공을 위한 도구요, 정치는 국민의 혈세로 이뤄지는 공익업무입니다. 생활고에 신음하는 국민이 허리띠를 풀어가며 혈세를 내는 것은 공익을 위한 기대 때문입니다. 허구한 날 민생과 상관없는 분탕질만 일삼는 정치라면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고서는 세금을 낼 그 어떤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정부는 늘 정부정책에 대한 믿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서로를 끝없이 불신하고 적대시하며 싸움질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우리 정치권을 보고 있노라면, '믿음을 가지라', '우리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은 허공을 떠도는 헛소리로만 들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믿음을 주는 정치는 믿음을 실행하는 정치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입니다.
우리 정치권은 더 이상 더러운 정쟁으로 나라사람들을 욕보이지 마십시오. 국민은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어리석지도 않거니와 언제까지 침묵하지도 않습니다. 21세기는 시작된 지 이미 오래고 세상은 그렇게 한가하게 그대들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진짜 정치를 하십시오. 그게 그대들과 국민 모두가 살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