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전 수능일의 기도(祈禱) -
부농(富農)이셨던 아비의 수만평 너른 토지를 사업으로 말아먹은 아들과, 그 아들이 철저한 패배 끝에 생명줄처럼 남겨둔 수천평의 토지마저 다 없앤 그 아들의 아들들. 어린 시절 ‘그’의 가난한 일상은 무척 비참했었습니다. 끼니를 걱정하는 어머니 한숨소리는 수만금 바윗덩이의 무게로 그의 가슴을 짓누르곤 했습니다. 초라하고 비루한 고교 자취생의 3년도 어쩌면 기적처럼 감사한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대학진학을 할까봐 연민과 걱정으로 힘들어한 가족들의 ‘침묵’은 오히려 과분한 것이었습니다.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그’는 대학이란 곳에 갔고, 20여년이 흐른 어느 날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연합고사일에 ‘아들이 행여 대학에 붙으면 어떻게 뒷바라지해야 하나’ 하는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부엌에서 정화수(井華水) 떠놓고 혼자 몰래 아들의 합격을 기원하는 새벽기도를 드리며 울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듣고 ‘그’는 가슴이 저려 많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어제 아들이 수능을 치렀습니다. 지독하게 중2병을 앓기 시작해 고3때 까지 오래도록 마음의 아픔과 싸워온 아들이었습니다. 그 세월동안 아들은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고 나는 공부하란 소리를 한 기억이 없습니다. 아내의 절망과 고통, 기다림의 시간은 참으로 길고 길었습니다. 그림, 글쓰기, 종이접기 등등 재능도 많았고, 마음은 여리고 고와 사랑도 많았던 막둥이의 고민과 고통의 시간이 참으로 길고 깊었습니다. 나는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기다렸지만, 수능일까지도 공부에 대한 열정과 열망의 흔적을 보지 못했습니다. 고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군대에 보내 자기가 그간 살아온 세월을 교훈삼아 새로운 동기를 갖고 늦은 공부를 시작하게 해야겠단 생각도 했습니다. 당연히 수능 당일에도 웃으며 어깨만 두드려줬습니다.
저녁에 아내는 말합니다. 아침 8시에 교회에 가서 시험을 치르는 아들과 똑 같은 시간표대로 10시간동안 꼼짝도 없이 기도를 드렸다고. ‘교회 가서 내 아들 잘 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는 하나님 골치 아프게 만드는 일’이라며 농담처럼 애기했던 순간도 기억나고, ‘다 자기 노력한 만큼 결과물이 나올 텐데 기도가 무슨 소용이냐’며 무심하게 건넨 말도 생각났습니다. 그 순간 ‘그’의 어머니 ‘정화수 기도’가 생각나 가슴이 참으로 저릿저릿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마음, 어미의 사랑이란 것이 저리도 맹목적이고 처절한 것이구나.’ 아내의 지친 얼굴에서 ‘그’의 어미가 준 사랑의 크기가 새삼 떠오릅니다. 세상의 사내들은 ‘아내’, ‘어미’가 없으면 사람노릇도 못하고 살 것이라고 나는 늘 자식들에게 말합니다. ‘그녀’들의 사랑은 노래가사처럼, 태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으며, 우주처럼 넓어서 늘 존경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시험을 끝낸 아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 들어옵나다. 표정은 밝고 가볍습니다. 소감을 물어보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후련하답니다. 학교라는 ‘감옥’에서 긴 시간의 刑을 받고 출소한 자의 해방감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마음이 절로 아려옵니다. 어쩌면 이제부터 제대로 된 시련의 시간이 시작될 것임을 알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삶의 모습은 다양하고 정답도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나의 길로 평생을 걸어갈 수 있었던 시절이 끝나고, 창의성과 다양성의 신세계가 축복처럼, 어쩌면 거대한 물결처럼 두렵게 달려오고 있습니다. 그 변혁과 혼돈(混沌)의 세상에서 아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 나는 아직 잘 모릅니다. 다만 오래도록 많이도 아파왔던 아들이기에, 더 깊고 넓어진 마음으로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은 무쇠보다 견고합니다.
心身이 건강하고, 키도 크며, 미소도 아름다운 ‘그’의 아들이, 더 넓은 세상 속으로 두려움 없이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갖길, 그 어떤 순간에도 절대 희망이라는 동아줄을 손에서 놓지 않길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