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무 생각없이 지인이 건네 준 깐마늘 한 봉지를 들고 일찍 귀가했습니다.
집에선 고기 굽는 냄새도 나고, 식탁엔 케잌과 와인도 있었습니다.
“여보. 마늘 한봉지 얻어 왔소.”하며, “오늘이 무슨 날인가?”하고 물었더니
아내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정말 몰라요?”라고 되묻습니다.
“막내 동생이 올해 결혼 14주년이라고 외식하러 간 모양이데?”하니,
아내가 “우린 30주년이지요.”라고 합니다. 헉!
아, 며칠 전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정작 당일 까먹었습니다.
결혼 30주년. 막내동생 결혼한 날과 똑같은 날.
순간 버벅거리자, 아내 왈 “마누라 사람 되라고 마늘 가져 오셨수?”라며 쏘아봅니다.
어찌어찌 고비를 넘기고 아껴두었던 와인을 나눠마시며 아내가 말합니다.
“사실 나도 오늘이 30주년인 건 몰랐어요.”
함 지고 호기롭게 처가 대문 박차고 들어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25년이란 세월이 후딱 지나갔습니다.
올해로 서른, 스물여섯 된 아들 둘 낳고 어찌어찌 살다보니 금새 그렇게 되었습니다.
삶은 무심한 듯 고요하여도 시간은 소리 없이 빠릅니다.
사람이 죽음에 대해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은,
죽음이 소리 소문도, 형체도 없이 다가오기 때문이라던 어느 작가의 글귀가 생각납니다.
결혼 30주년은 ‘진주혼식’으로, 진주처럼 오랜 세월을 거쳐 귀하고 빛나는 사랑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어제로 진주가 되었으니, 꼬부랑 노인이 되어 금혼식(金婚式) 할 때까지 서로 잘 빛나게 살면 좋겠습니다.
“진주혼식에 깐 마늘 들고 온 인간은 지구상에 당신밖에 없을 것”이라며,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열심히 살겠다.”고 약속하는 아내의 야윈 손등이 더 시리고 고마웠습니다.
그나저나 만회할 묘수를 찾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