落詩(낙서 또는 詩) - 99

by 권태윤

빈집 -


퇴근하여 집에 갔을 때

아내가 없으면 온 집안이 시베리아 벌판이다

문틈이고 부엌이고 온통

적막의 서릿발들이 칼날처럼 꽂혀 있다


퇴근하여 집에 왔을 때

아내가 있으면 온 집안이 포근한 봄날이다

거실이며 베란다에도 온통

향기로운 꽃과 풀들이 신나게 춤추고 있다


나는 때로 빈집의 고요가 두렵기도 하고

아내란 존재가 장작불처럼 참 따뜻하기도 하여

울다가 웃다가 하는 나그네다


아내는 나와 같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술 먹고 집에 가질 않아도

밤 열두시가 넘도록 전화를 하지 않아도

아무런 걱정도 없이 셔츠를 다리고

도 닦는 스님처럼 무심히 공부만 한다

그저 내가

불성실한 뜨내기 손님인양 가끔

물끄러미 바라만본다


하기야 온통 허물덩어리인 나를

여태껏 목숨 부지하게 해준 은인이니

빈집 살이 신세 면하게 해준 것만도

그저 나무아미타불 아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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