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門前)처리

by 권태윤

축구를 보다보면 두 부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곁에서 뛰어가며 '넘겨달라'고 죽어라 악다구니를 써도 들은 척도 않고 혼자서 공을 몰고 가다가 결국 그 공을 밟고 넘어지거나, 제풀에 지쳐 넘어져 상처를 입거나, 다리에 힘이 풀려 상대 수비수에게 허무하게 공을 빼앗기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충분히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허둥대다 무조건 다른 선수에게 건네주거나 어설프게 건네주다 공을 빼앗겨 역습을 당하게 하는 선수도 있습니다.


이는 결국 욕심이 지나친 선수, 자신감이 부족한 선수로 나눌 수 있다는 말입니다. 흔히 지적되는 문전처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할 상황에서 곁에 누가 달려오는지 살펴볼 생각도 않고 냅다 공을 내질러 ‘허공 속으로’ 보내버리거나, 반드시 슈팅을 해야 할 상황에서 머뭇거리며 쓸데없이 패스를 하다가 상대편에게 공을 빼앗겨 버리는 선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고라고 자부하는 선수들만 모인 국가대표선수들에서도 그런 장면은 그대로 연출됩니다. 옆 선수에게 살짝만 건네주면 그대로 골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에서 무모한 슈팅으로 다른 선수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선수, 패스해달라고 아무리 소리 질러도 들은 척도 않고 혼자 오래 몰고 가다 공을 빼앗겨버리는 선수, 상대 수비수 한명도 제끼지 못하고 공이 오면 패스하기에 급급한 선수, 한창 빠른 공격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앞에 상대 수비수 한 명만 나타나도 갑자기 자기진영으로 백패스를 해 김을 빼버리는 선수가 있습니다.


우리 축구는 이렇게 자주 골 결정력 부족, 즉 어설픈 문전처리라는 고질병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수 십 년간 거론된 문제임에도 여전히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미숙한 문전처리(?)는 ‘한국남성의 고질병’이라는 우스개소리까지 합니다. 슈팅 수에서는 물론이고 내용면에서도 앞서는 경기를 펼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제 역할을 못해 패배를 당하는 우리 축구 때문에 팬들은 불만입니다. 오죽하면 “골대를 아예 다른 곳으로 옮겨놓고 연습을 하면 실제 시합 때는 제대로 들어갈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는 조롱까지 할까요.


따지고 보면 축구뿐만이 아닙니다. 결정적 ‘한 방’이 없는 권투선수는 쉴 새 없이 주먹을 날리면서도 제대로 맞히질 못하다가 결국 상대의 한 방에 허망하게 무릎 꿇는 경우가 허다하고, 한방이면 승리할 게임에서 결국 헛스윙으로 삼진당해 이길 수 있었던 경기를 망치는 야구선수도 많습니다. 매일 수십 킬로미터씩 달리며 연습을 하던 마라톤 선수가 막상 시합날 다리에 쥐가 나 쓰러지거나 줄곧 선두를 달리다가 막판 뒷심이 부족해 우승을 내주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결정적일 때 제 역할을 못해 국민을 실망시키는 경기는 축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포츠뿐만이 아닙니다. 결정적 순간에 세계의 흐름을 파악해 미리 대처하지 못한 우리의 위정자들로 인해 나라가 일제에 짓밟혔던 굴욕의 역사를 비롯해, 국민의 희생으로 군사독재를 끝내고 민주적 정부를 세우기 위한 모든 준비를 끝냈지만 결정적 순간에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양김의 욕심으로 인해 결국 군사정권의 연장을 가져왔던 기억도 생생하고, 실력도 안 되면서 OECD에 가입하며 선진국이 다 된 양 떠들다 외환관리를 잘못해 한순간에 나라가 부도나 온 국민이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국가간 협상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저질러 국익에 손상을 자초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온갖 범죄사건들도 초기엔 떠들썩하게 시작하다가 지지부진 잊혀지는 경우가 많고 그나마 결국 전혀 엉뚱한 판단을 내리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밤새 공부하다 막상 시험 날엔 답안지를 잘못 작성해 죽을 쑤는 학생도 많고, 실컷 고생해 지어놓은 건축물이 기초나 마감공사 부실로 붕괴되어 재산과 인명을 잃는 경우도 있고, 어렵게 일군 기업을 방만하게 경영하다 하루아침에 부도내고 망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들 왜 이렇게 ‘문전처리’에 미숙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엉뚱한 짓을 해 큰 고통과 손해를 당하는 일을 반복할까요. 그것을 크게 두 가지 원인에서 찾습니다. 그 하나는 대충대충, 빨리빨리를 추구하는데서 오는 결과요, 다른 하나는 기본실력 부족에 따른 자신감 부족이라는 생각입니다. 과욕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냉정한 판단력과 이성을 앗아갑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급하게 과욕을 부리면 반드시 배탈이 나고 맙니다. 사랑도 지나치면 병이 되고, 빨리 많은 돈을 벌겠다는 과욕, 명예에 대한 과욕도 그 끝은 좋지 않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차분해야 문전을 향해 돌진하는 다른 선수가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말은 슈팅할 위치에 있지 않으면서도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패스도 않고 허공을 향해 공을 차버리거나, 자기가 충분히 골을 넣을 수 있는 상황에서 ‘혹시 안 들어가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에 스텝도 맞지 않는 다른 선수에게 공을 전달해 결국 공을 빼앗겨버려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로지 골을 넣기 위해, 골이 들어 갈 수 있도록 책임을 지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더 좋은 위치에 자리한 선수에게 볼을 전달할 수도 있는 여유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자신감 결여는 결국 실력 부족에 원인이 있습니다. 실력을 갈고 닦아 놓으면 중요한 상황에서 안정된 경기를 펼칠 수 있습니다. 실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체력도 길러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 있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둬야 합니다. 그러나 기본기가 부족하니 상대 수비수가 다가오기만 해도 불안하고, 골문 앞에서도 어쩔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감에는 심리적 요인도 많습니다. 상대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움을 가지면 그 싸움은 이미 하나마나입니다.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두둑한 배짱도 동시에 길러야 합니다.


과정을 무시한 과욕과 자신감 부족이 비단 축구만이 아니라, 우리사회 모든 분야의 실패와 실수를 가져오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제부터라도 과욕을 버리고 자신감을 기르는 노력들을 해나가야 합니다.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빠진 정치권 인사들, 조직의 외형에 집착에 껍데기 부풀리기에 재미를 붙인 경제인들, 자신들만이 정의요 이 세상을 밝힐 유일한 집단이라는 오만에 빠진 시민들, 정권마저 창출할 수 있다고 믿으며 여론을 조작하는 언론들, 가르치는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정치권 주변을 기웃거리는 사이비 학자들, 수사는 제대로 못하면서 권력욕에 물든 검찰과 경찰, 모험과 도전은커녕 돈놀이에만 욕심을 부리는 사이비 기업인들 따위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많은 부류들이 그릇된 과욕을 버려야 합니다.


진정한 실력과 자신감은 권력의 무게, 명예의 크기에 절대 비례하지 않습니다. 남몰래 끊임없이 노력하는 선수는 반드시 빛을 보게 되어 있고, 묵묵히 실력을 쌓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성공하기 마련입니다. 축구든 인생이든 매 순간이 중요합니다. 순간에 놓쳐버린 기회는 여러 번 오지 않습니다. 과욕과 자신감 결여는 그런 귀한 기회들을 헛되게 만들고 맙니다. ‘문전처리’가 확실한 국민이 되는 길은, 과욕을 버리고 스스로 제대로 된 실력을 기르는데 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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