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첨부터 어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른 속에는 아이와 청년이 들어 있습니다. 노인 속에는 아이와 청년, 장년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기억은 시간의 마차를 타고 만리를 달려가도 여전히 나그네의 몸속에 오롯이 저장되어 머뭅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안쓰러움을 느끼고, 청년의 실패에 공감하며, 가장의 힘겨움에 함께 울 수 있는 것은, 자신이 경험한 시간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얼굴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니다. 그것은 마치 깊숙이 몸을 숨기고 얼굴만 내민 빙산(氷山)과도 같습니다. 우리 속에는 시간의 흐름과, 그 속에서 울고 웃었던 기억들이 고목의 나이테처럼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년 전의 하루가 생각납니다. 휴가 나온 아들과 아들의 친구에게 장년의 귀한 밥상을 경험하게 해주러 가는 길. 택시 드라이버는 요즘 군인들 봉급 많다며 옛 시절 얘기를 꺼냅니다. 이등병 때 월급 2,500원, 병장 때 7,500원 받았단 얘기에 그가 가소롭다는 듯 웃습니다. 난 450원 받았어요. 그것도 병장 때. 세월은 바람처럼 흘러도 우리의 기억은 온몸에 머물러 있습니다. 폭언과 구타가 밤낮으로 난무하던 그 시절 군 생활에 비해 요즘 것들 병영캠프 체험한다 놀리지만, 그들의 시간도 울타리 안에서 가쁜 숨 몰아쉬는 버거운 일상일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서럽기도 하지만 사실은 축복입니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며 시들어 가지 않는다면, 그 박제된 인생은 얼마나 고통스런 무료함일까요. 오고 가는 이치가 정지된 시간의 형틀은 그 자체로 고통스런 감옥살이일 겁니다. 더 넓어지는 마음의 폭과 더 깊어지는 생각의 깊이는 세월이 주는 선물 같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넘치는 기쁨이기도 하지만, 애잔함도 그만큼 큽니다. 인생사가 주는 기쁨의 시간만큼 고통과 절망, 좌절과 상처도 그만큼 많을 것임을 선험자로서 알기 때문입니다. 해서 부모의 자식사랑은 어쩔 수 없이 무한(無限) 그 자체입니다.
아들이 어미의 생일에 케잌과 선물(목도리)을 내밉니다. 깔깔거리며 애교 부리던 꼬맹이가 어느덧 어미를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도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나의 몸속엔 우리가 함께 살았던 시간의 흔적들이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이들을 숙명처럼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