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분열의 파멸적 연쇄효과

by 권태윤

2016년 박근혜정권 뿐만 아닙니다. 2007년의 민주당에서도 배워야만 합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새천년민주당은, 이듬해인 2003년 열린우리당(노무현대통령+정동영대표)과 민주당(조순형대표)으로 분당했습니다. “대선 빚을 갚으라”는 둥 온갖 꼴사나운 대립각을 세우던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지난 2004년, 이른바 탄핵사태로 인해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탄핵의 역풍으로 인해 열린우리당은 152석의 골리앗 정당이 됐고, 민주당은 원내교섭단체도 만들지 못하는 9석의 꼬마정당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다수당을 만들어준 국민의 요구를 착각한 열린우리당은 계속해서 민생과는 거리가 먼 이념, 과거에만 집착했고, 그 결과 2005년 치러진 두 차례의 재ㆍ보궐선거에서 각각 23:0, 4:0이라는 참담한 결과로 전패하는 수모를 겼었습니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차려 이듬해인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도 완패를 이어갔습니다.


더구나 당시 노 대통령은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장관을 7명이나 차출해 투입해 놓고서도, 선거 전인 2월26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선거는) 제대로 된 업적 평가가 아니라 이미지 평가일 수밖에 없다”며 미리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가 하면, 열린우리당 더러 “멀리 보고 준비하며 인내할 줄 아는 지혜와 자세가 필요한 때”라고 말하면서 5.31 지방선거와 자신은 무관한 듯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지방선거 참패 후 열린우리당은 정신을 차리는가 했더니 이듬해인 2007년 5월, 돌연 김한길 등이 탈당해 중도개혁통합신당(김한길 대표)을 창당하면서 열린우리당은 분당했습니다. 한 달 뒤인 2007년 6월, 이번에는 민주당(박상천대표)과 김한길의 중도개혁통합신당이 합쳐 다시 중도통합민주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열린우리당과 합당을 추진했으나 중도통합민주당 박상천대표가 당 대 당 통합을 반대하는 바람에 김한길 등 이들 중 일부만 다시 탈당해 열린우리당과 합당, 2007년 7월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당명변경)이라는 이름도 거창한 신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대선에서 각각의 후보를 내 선거를 치렀고, 2008년 4.9총선을 앞두고 다시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합당해, ‘새천년민주당’의 다른 이름일 뿐인 ‘통합민주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습니다. 가히 정당 만들기의 ‘달인’들이라고 칭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요란스럽고 혼란스런 일이 수세기도 아닌, 불과 5년 동안, 그것도 당시 여당이 해 온 일의 전부입니다. 이 와중에, 자신이 속한 정당이 어느 당인지도 모르거나, 탈당한 정당에 다시 탈당계를 내거나 하는 등의 온갖 웃지 못할 해프닝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이러했으니 그동안 나라꼴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습니다. 집권여당이 5년간 이러고도 나라가 제대로 유지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국민의힘은,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 그들만의 헤어짐과 만남의 ‘변신 이벤트’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제 살길만 찾으려는 기회주의자들에겐 결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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