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여전히 호구인가

by 권태윤

살다보면 누가 고객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장면들과 자주 접하게 됩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좋은 정책으로 서비스해야 할 정치권이 도리어 고객행세를 합니다. 봉사해야 할 자들이 도리어 봉사를 받으려고 하는 판국에 다른 분야는 말해 무엇 하겠느냐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지불할 것은 모조리 지불하면서도 정당한 서비스를 받기는커녕 농락만 당하는 입장이라면 그건 이미 고객이 아니라 ‘봉’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면 “이 정거장은 열차와 내리는 곳의 간격이 넓어 발이 빠지거나 다칠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사실 이 소릴 들을 때 마다 화가 납니다. 애초에 공사를 할 때 이런 점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차원에서 철저하게 시공했어야 합니다. 왜 발이 빠져서 다칠 위험이 있는 시설로 부실하게 만들어 놓고 “알아서 조심하라”는 식의 무책임한 말을 할까요. 게다가 청력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 알량한 경고 서비스(?)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다 발이라도 빠져 생명까지 잃을 사고가 발생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그때도 “조심했더라면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담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에서 그렇게 건강에 나쁘다면 아예 만들어 팔지를 말던가, 전매권을 가지고 장사를 해서는 안 됩니다. 온갖 세금과 벌금을 물려가며, 피우는 자들에게만 일방적으로 금전적인 피해와 건강까지 해치도록 방조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거나 이런저런 나쁜 물질이 들어있다는 경고문을 써 붙인다는 것은 한마디로 흡연자를 조롱하는 짓입니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을 소중한 고객으로 생각한다면, 정부의 주장처럼 그렇게 건강을 해치고 청소년에게 유해한 담배를 팔면서 알량한 문구만으로 경고한다는 것은 위선입니다. 요즘에는 담배갑에 흉측한 그림을 넣지만, 이미 흡연자는 정부에게 있어 결코 ‘고객’이 아니라 ‘봉’이 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자동차를 이용하면서 느끼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용자인 고객은 높은 세금을 비롯해 비싼 돈을 지불하고 구입해야 함은 물론이요 구입 후 운행하면서도 기름이다 보험이다 해서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툭하면 법규에 걸려 결코 만만찮은 벌금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도 주차장은 갈수록 모자라 서민들의 호주머니는 벌금에 완전 개방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급한 볼일이 있어 은행 앞에 잠시 차를 세웠다가 견인을 당했습니다. 주차를 하기 위해 그 주변을 몇 바퀴나 돌았지만 주차장이 없어 비상등을 켜놓고 3분 정도 자릴 비웠는데 그사이 견인을 해 가버렸습니다. 차를 찾기 위해 택시비를 써야했고, 견인료와 보관료 그리고 벌금고지서 까지 발부받았습니다. 은행 볼일을 보다가 한순간에 10만 원 이상을 강탈(?)당한 것입니다. 주차장도 갖추지 않고 영업하는 은행의 무대책도 문제거니와, 무조건 단속을 위한 단속에 몰두하는 행정기관이나 견인업체에게도 문제는 있습니다. 대책을 마련해놓지도 않고 무조건 “그건 안 된다”는 식의 행정이나 영업은 고객을 고객으로 보지 않고 단순한 ‘봉’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나 교육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거의 경우 공명선거 하라고 잔소리하기 보다는 부정한 방법으로 선거운동 하거나, 더러운 방법으로 당선된 사람은 끝까지 추적해 기필코 죄를 묻는 게 더 확실한 방법입니다. 물론 선거에 있어서만큼 유권자는 고객이 아니라 주인입니다. 그러나 주인을 속이고 고객행세를 하는 출마자부터 확실하게 단속할 책임이나, 부정선거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분명하게 심어주어야 할 책임까지 유권자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의 경우도 “사교육을 많이 시킨다.”느니 하는 훈계나 일삼기 보다는 학벌위주의 풍토부터 개선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성적의 높낮이나, 출신학교의 종류에 따라 행해지는 사회적 차별을 제거해나가는 것이 교육수요자인 고객을 위한 진정한 서비스입니다. 단순히 이름난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그의 능력마저 거기에 비례해 높은 평가를 받는 사회풍토를 그대로 두고 고객인 학부모의 과열 과외를 질타하는 것은 코미디입니다.


농촌문제, 그중에서 쌀 문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나 농민단체에서는 “농민과 농업을 살리기 위해 쌀 소비를 늘려야 한다.”면서 쌀 소비자인 고객들에게 “우리 쌀을 더 많이 먹어 달라”고 호소합니다. 일부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지역 유지들이나 단체를 찾아다니며 “쌀을 사 달라”고 반강제적으로 쌀을 떠넘긴 적도 있습니다. 정말 웃기는 일입니다. 적정량의 쌀을 생산하도록 수요와 공급을 감안한 쌀 생산이 이뤄지도록 관리해야 할 정부가 수요관리도 없이 “쌀이 남아돈다.”며 “쌀 많이 먹자”고 떠든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우리 농민들 역시 정부의 부실한 농정으로 인한 피해자이긴 마찬가지지만, 일단 무턱대고 생산해놓고 소비자들에게 매달리고 있는데,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백날 가야 우리 쌀 농업의 미래도 없습니다.


민간기업에 있어 고객을 무시하거나, 고객을 ‘봉’으로 여긴다면 결국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쩌다 용케 고객을 속일수도 있겠지만, 잘못된 ‘고객 이용해 먹기’는 반드시 그보다 더한 손해를 자신들에게 안겨주고 말 것입니다. 고객으로서 고객다운 대접을 받을 권리는 결국, 국민으로서 국가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을 권리,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권리를 의미합니다. 눈에 보이는 뻔한 눈속임으로 고객을 농락하는 행위만큼은 용납되어서는 안됩니다. 국만은 호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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