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보는 '파랑새' 동화

by 권태윤

1908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된 벨기에의 작가 마테를링크(Maurice-Polydore-Marie-Bernard, Maeterlinck)의 동화극 『파랑새』를 다들 잘 알고 계실겁니다. 가난한 나무꾼의 아이들인 틸틸과 미틸 남매가 크리스마스 전야에 꾼 꿈을 극으로 엮은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를 암시한 내용으로 유명합니다.


극 속에서 남매는 마법사 할멈으로부터 ‘병든 딸을 위해 파랑새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남매는 개·고양이·빛·물·빵·설탕 등의 요정을 데리고 추억의 나라와 미래의 나라 따위를 방문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옵니다. 꿈을 깨고 보니 자기들이 기르고 있던 비둘기가 파랗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비록 동화극이지만 ‘행복은 언제나 우리들 가까이에 있다’는 내용으로 인생에 대한 깊은 명상이 여러 곳에 담긴 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세속적인 나는, 걸작이라는 이 동화극이 전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에게 있어 ‘파랑새’는, 필부(匹夫)들이 발견하기엔 너무도 어렵고 먼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너도나도 감동적이라는 동화극 『파랑새』를 우리 서민들의 삶과 현실에 대입시켜봅니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교훈적 의미 보다는 ‘현재의 보잘 것 없는 당신의 상황에 불평하지 말고 만족하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약 올림’의 의미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이니, ‘행복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들은 모두,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쓸쓸한 자기위로, 많이 가진 사람들이 꾸며낸 속임수는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처럼 가까이에 있다는 ‘파랑새(행복)’를, 서민들은 ‘왜 이리도 찾기 어려운가?’ 하는 분노, ‘왜 서민들은 우리 곁의 아주 평범한 것에서만 행복을 발견하도록 세뇌당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주로 많이 가진 사람들이 늘상 부르짖는 소리이긴 하지만 “내로라할 만한 천연자원도 없는 땅에서 세계 10위권 무역국으로 성장했고, 적어도 밥 굶는 사람은 없는 풍요로운 나라에 살고 있으니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럽냐?”며 우리가 가진 ‘넘치는 행복’을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서민들이라고 해서 곁에 놓인 ‘모조품 파랑새’에 만족하라는 주장은 약올림에 불과합니다. 부자들의 ‘파랑새의 교훈’ 이야기는, 마치 가난한 사람들이 보는 곁에서 넘치는 부를 자랑하며 “이런 거 부러워 할 것 없다. 우리도 이런 것 누려봤자 당신들 보다 더 불행하다”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민들의 소망은 부자들의 파랑새를 가로채려는 것이 아닙니다. 공정한 기회를 통해 누구든 얻을 수 있는 ‘살아있는 파랑새(물질적 행복을 포함하는 행복)’를, 독점하지 말라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도를 닦는 수도자가 아닌 범부들은 살아있는 파랑새를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 있습니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는 어찌보면,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힘 없고 못 가진 사람들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는 고발인 셈입니다. 모조품 파랑새의 사기극에 놀아날 국민은 없습니다. 이젠 약자도 진짜 파랑새를 공유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실상 서민들이 찾고 싶은 파랑새는 기적이나 꿈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파랑새일 뿐입니다. 사기를 치고 도적질을 하고 투기를 하지 않아도, 열심히 일하고 알뜰하게 저축하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나라, 법을 지키고 착하게 사는 사람이 오히려 어리석은 바보로 취급당하지 않는 상식의 나라, 가졌든 못 가졌든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다는 신뢰의 나라, 누구나 차별없이 일한 만큼 받는 공평성 나라라는, 너무도 당연한 세상을 ‘당연하게’ 믿고 살고 싶을 뿐입니다.


건강한 나라, 꿈과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드는 일은, 이 나라의 대다수를 이루는 서민들이 자신의 노력과 공정한 게임의 룰에 따라 ‘살아있는 파랑새’를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너무도 단순하고 명쾌한 과제이기 때문에 수십 년 행정경험, 정치경험이 있는 지도자가 아니어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세상입니다. 가능하지만 다만 지금껏 그렇게 해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누구나가 진짜 파랑새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의 세상을 만드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파랑새 독점’의 사기극을 깨부수고, ‘파랑새 공유’의 행복 시스템을 구축할 지도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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