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기(耕耘機)에 대한 기억

by 권태윤

낡은 리어카나 끌던 우리 집에 어느 날 경운기가 생겼습니다. ‘생겼다’기 보다는 아버지가 할부로 구입하셨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짐작한다.’는 말은, 사업한다며 가산(家産)을 탕진하신 아버지가 현금을 주고 샀을 리 만무했기 때문입니다.


경운기는 단어 그대로 동력을 이용해 논밭을 갈아 일구는 기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시절 경운기’는 그야말로 만능이었습니다. 사람들과 온갖 짐을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이었으며, 과수원과 논에 농약을 칠 때 사용하는 기계였으며, 밭도 갈고 논도 갈며 벼도 심는, 만능 가제트 팔 보다 더 나은 요상한 물건이었습니다.


발가벗은 채 고추 다 내놓고 돌아다니던 꼬맹이들 가운데도 기계에 능숙한 몇몇은 이미 경운기를 애완견 다루듯 하는 녀석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심한 기계치인 나는 늘 경운기가 무서웠습니다. 더러 용기를 내 수동으로 시동을 걸다가도 갑자기 걸리는 시동 탓에 ‘손잡이’ 쇳덩이에 맞는 일도 잦았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배운 경운기를 몰고 20여리 길 혼자 부모님 심부름을 갔다가 짐칸과 몸체를 연결하는 부위가 갑자기 부러져 안장에 올라 탈수도 없는 경운기를 몰고(몰고 왔다기 보다는 끌고 옴) 10리가 넘는 길을 혼자 끌고오며 무섭고 힘이 들어 울었던 기억이 어제 일인 것만 같습니다.


경운기로 큰 사고(?)를 낸 적도 있습니다. 동생과 호기를 부리며 경운기를 몰고 나무를 하러 갔는데, 어찌하다(뒤돌아 갈 수가 없어서) 山정상 가까이 올라가게 됐다. 어찌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동생과 나무를 한가득 해서 싣고 막상 내려가려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형을 불러서 대신 몰고 내려가게 하자는 동생의 말을 무시하고 일단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내리막에서 속도제어를 못해 겨우 뛰어내렸고, 경운기는 혼자서 미친 듯이 굉음을 내며 수백미터 언덕 아래로 쏜살같이 곤두박질 쳤습니다. 그 비싼 경운기가 다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사고소식을 듣고 달려와 검은 연료를 꾸역꾸역 토해내며 퍼져있는 경운기를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던 형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난 그 뒤로 여간해선 경운기를 몰지 않았습니다. 기계는 사람의 말을 잘 듣는 듯 하다가도 한순간 미쳐 날뛰기 일쑤입니다. 일부 자율주행 가능이 대중화 되었고 전기차기 온갖 기능을 자랑하지만 나는 여전히 운전이, 기계가 무섭습니다. 죽기 전까지 차에게 모든 것을 맘 편히 맡기지 못할 듯 합니다.


경운기로 인한 사고는 많이도 생겼습니다. 고향마을에서도 숱하게 경운기로 인한 사고가 났습니다. 동네 형은 로터리를 치다가 두 다리가 말려들어 평생 하반신 불구가 되었습니다. 동네 아저씨 두어 분은 경운기에 깔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잦은 사고로 인해 농기계 보험이란 것이 생겨났지만, 도시사람들 목숨은 자동차가 많이 앗아가듯, 시골사람들 목숨은 경운기가 앗아갔습니다.


밝음이 어둠의 다른 면이듯 이로움을 주는 존재는 반드시 그만큼의 해로움도 함께 줍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많은 문명의 이기(利器)들이 가져다 줄 고통과 시련 또한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오늘도 시골길엔 경운기가 달리고, 늙고 병든 농부의 목숨도 그와 함께 달립니다. 부디 무사하시길...

다운로드.jpeg















작가의 이전글보좌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