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宰相)이라고 할 때의 ‘相’이란 글자에는 “눈 먼 사람을 돕는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보필(輔弼)이란 글자에서 길을 이끄는 것을 ‘보(輔)’라 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것을 ‘필(弼)’이라 합니다. ‘위험하면 받쳐주고, 쓰러지면 일으키며, 바른 길로 이끌고 잘못을 바로잡은 것’이 재상의 중요한 역할이란 의미입니다. ≪여씨춘추(呂氏春秋)≫ <自知> 편에서도 “천자가 보필하는 자를 세우고, 사보(師保)를 두는 것은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방도”라고 했습니다. 국무총리, 장관의 자리에 있으면서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관련해 제대로 받쳐주고, 일으켜 주고, 바로 잡아 주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 보좌하는 자리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서(漢書)≫ <병길전(丙吉傳)>을 보면 ‘문우천(問牛喘)’이라는 고사가 나옵니다. 한나라 선제(宣帝) 때 승상을 지낸 병길은 “작은 일은 재상이 직접 나서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총리(재상)의 권한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어질고 지혜로운 자를 추천하여 나랏일을 돕게 하는 ‘인사권’입니다. 동한시대 명제(明帝)는 “무릇 현자를 추천하여 나랏일을 돕게 하는 것은 재상의 직무다”라고 했고, 북송 초기 재상 범질(范質)도 “재상은 현자를 추천하는 것이 본직이다”고 했습니다. 당태종 이세민도 “널리 현인을 구하여 재능에 따라 임무를 맡겨야 한다. 이것이 재상의 직분이다.”고 했습니다. 국무총리나 장관들이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옛말에 “(그 자리에 있어야 할)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고 했습니다. 총리나 장관들의 중요한 임무 중 또 하나는 대통령과 마주하여 政事를 논하는 것입니다. 명나라 중기의 몇몇 황제들은 십수년동안 內閣大學士(재상)를 만나지 않음으로써, 마주보고 정사를 협의하는 방식은 폐지되고 문서만이 유일한 협의방식이 되었습니다. 총리와 장관들이 대통령의 잘못을 바로 잡지 못라고 그럴 의지도 없다면 무요지물이란 의미입니다.
≪직관분기(職官分紀)≫권3 재상에 따르면, 당나라때 어진 정승이었던 요숭(姚崇)이 무측천(武則天)에게 장간지(張柬之)를 추천한 까닭은, 장간지가 큰일을 꾀하고 판단할 수 있는 상당한 능력을 갖췄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총리가 대통령과 정책협의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총리 자신이 정책에 대한 판단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는 총리나 장관을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한서(漢書)≫ <주부전(朱浮傳)>에는 대신의 우두머리로서 이상적인 재상은 “군주의 명령이라도 저항하는 등 군주에 반대하는 행동으로 국가의 위기를 안정시켜야 사직(社稷)의 신하라 할 수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체제가 부여한 정책제안권과 인사권을 가지고 대통령의 잘못을 바로잡아, 아부하지 않고 직분을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송나라 태종때 재상 여몽정(呂夢正)은 군주의 부당한 명령에 대해 “신은 망령되게 군주의 뜻에만 좇아 나랏일을 해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런 직분을 행한 총리나 장관을 본적이 없습니다.
총리나 장관은 구체적인 특기나 기능을 가지고 자리와 일을 지켜내는 존재가 아니라, 그 나름대로의 대체(大體)가 있습니다. 그 大體란, “총리가 그 방면의 능력자일 필요는 없으며, 특정 방면의 중임을 담당할 중신일 필요도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총리나 장관은 덕망으로 뭇사람들을 설복시킬 수 있어야 하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재능을 갖춘 인물이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재상의 道가 있었듯, 총리의 道가 있다는 말입니다. 당나라 때 유종원이 쓴 ≪재인전(梓人傳)≫에는, “재인(재상)은 기강을 세우고 법도를 정비하여, 천하의 인재를 골라 능력에 맞는 일을 맡기며, 천하 사람들을 편하게 생업에 종사하게 한다. 능력 있는 자는 나오게 하고, 무능력한 자는 물러나게 한다.”고 했습니다. ‘재상은 자잘한 일은 돌보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말한 인물이 한나라 선제 때의 승상 병길(丙吉)이었습니다. 그는 ‘작은 일은 몸소 돌보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대체를 안다’는 평가를 얻었습니다. 요즘 총리나 장관이 그런 분별력과 기본을 갖췄는지 솔직히 의문입니다.
관직을 설치하고 나눈 본래의 뜻은, “상급자는 두루두루 들어 큰 줄기를 다스리고, 하급자는 큰 줄기를 나누어 자잘한 일을 다스리기 위한데 있었다.”는 사마광(司馬光)의 말에 있습니다. 가까운 것을 꼼꼼히 챙기다 보면 먼 것이 소홀할 수밖에 없고, 자잘한 것에 신경을 쓰다보면 큰 것을 빠뜨리게 마련입니다. 총리가 할 ‘큰 일’은 국민들의 의식주, 즉 民生을 보살피는 일입니다. 그걸 제대로 못하면서 선거출마에 정신을 파는 자들이 있다면 무용지물을 너머 나라에 해가 되는 자들입니다.
한비자 팔경(八經)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下等 군주는 자신의 능력을 있는 대로 써 버리며, 中等 군주는 남의 힘을 최대한 빌리며, 上等 군주는 남의 지혜를 남김없이 활용한다.” 上等 군주란 곧 ‘현명한 군주’를 말합니다. 군주가 신하를 스승, 친구, 손님으로 대하면 天子, 王, 覇者의 業을 이룰 수 있지만, 어리석고 노예와 같은 자를 신하로 삼으면 나라가 위태롭지 않으면 망합니다. 전직 대통령을 망하는 길로 가도록 방치하거나 도운 자들이 있으니, ‘어리석고 노예와 같은 자’들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자들은, 작게는 대통령의 불행이었고, 크게는 나라의 불행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대망을 꿈꾼다면 지나가는 개도 웃고, 들판의 소도 웃을 일입니다.
결국 사람을 잘 고르고, 그들에게 적합한 직분을 맡기는 것이 군주의 기본이요, 그렇게 뽑힌 총리나 장관들이 반드시 해야할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 그것이 기본이요 근본이란 점을 새삼 떠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