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는 삶

by 권태윤

인생에서는 ‘살아갈 계획’ 보다 ‘죽음에 대한 대비’가 더 필요합니다.


‘갑자기 내가 죽거나 아내가 죽는다면 어쩌지?’ 문득 새벽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연사(突然死)일 경우가 가장 난감할 것입니다. 내가 먼저 죽으면 그나마 나을 터이지만, 행여 아내가 먼저 죽는다면 집안은 하루아침에 풍비박산(風飛雹散) 나고 말 것입니다. 장례를 준비하고 치르는 일부터 온갖 정리해야 할 일들로 세상물정 모르는 나와 두 아들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릴 것입니다.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당장 메뉴얼을 만들어 둬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후(死後) 매뉴얼>. 나나 아내가 갑자기 죽더라도 남은 가족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장례부터 주변정리, 자식들에게 필요한 유용한 삶의 지식과 지혜, 은혜를 갚거나 감사를 표해야 할 사람들 명단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체계적으로 미리미리 정리해둘 필요를 느낍니다. 틈틈이 시간을 내서 서둘러 만들어둬야겠습니다. 반대로 아내 것도 부탁해야겠습니다. 살아오면서 일 외에는 아무런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살아온 ‘생존 무능력자’인 내가 아내를 잃고도 살아남을 방법은 그나마 그뿐입니다.


이재(理財)에 어둡고 무관심한 나로서는 재산을 물려줄 재주는 없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느낀 소소한 지혜들은 자식들에게 물려줄 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면, 칫솔질은 어떻게 하라든지, 술은 어떻게 마시라든지, 눈길 운전은 어떻게 하고, 빙판은 어찌 걸으라든지 하는 것 따위입니다. 아내는 부지런하고 심지(心地)가 굳센 사람이니 두 아들을 의지하며 잘 살아갈 것이란 믿음이 있습니다. 다만 자식 놈들이 제 어미에게 불효나 하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입니다. 미리미리 단도리 해야겠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제품들에는 메뉴얼이 있습니다. 하다못해 건전지도 다 쓰면 어찌 처리해야할지 메뉴얼에 나옵니다. 그런데 중하디 중한 사람에 대해서는 메뉴얼이 드물거나 없습니다. 더러 지혜로운 이들은 미리미리 유언장을 준비해 두는데, 그마저도 재산 문제가 핵심을 이룹니다. 이건 옳은 메뉴얼이 아닙니다. 혼자 남겨질 배우자,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없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자식들에게 필요한 메뉴얼은 돈 말고도 많을 것입니다.


막상 그리 마음을 먹고 나니 조급증이 듭니다. 해주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부터 실행에 옮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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