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유화주의로 오히려 영국을 위기에 빠뜨린 '체임벌린'이란 수상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에 어설픈 평화주의에 빠져 안보를 위태롭게 만드는 자들을 대입해보면 어떨까요. 기시감이 느껴집니다. '닮았다'는 말 보다는 '같다'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위정자들이 절로 떠오릅니다. 안보와 외교에 있어서 만큼은 무지와 독선이 개입하게 두어서는 안됩니다. 무지한 지도자는 거짓 평화를 비싼 대가를 주고 사옵니다. 그리고 결국 뒷통수를 맞습니다. 자신만 바보가 되는 게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위태롭게 만듭니다. 어설픈 민족우선주의, 낭만적 평화주의로는 결코 진짜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아치 브라운의 [강한 리더라는 신화] 중에 있는 구절을 옮겨봅니다.
"체임벌린이 1938년9월29일에 히틀러와의 뭔헨협상을 마치고 30일 귀국하여 '우리 시대는 평화로울 것입니다'라고 선포했을 때, 영국국민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체임벌린은 자신이 단지 개전 시기를 늦춘 것이 아니라 '명예로운 평화'를 확보했다고 믿었다. 체임벌린은 군비확충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다. 그가 해임한 공군장관 스위턴은 '체임벌린이 전제군주처럼 자신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못하게 된 것은 생애 처음으로 외교분야에 발을 들였을 때 부터였다. 그는 자신이 가장 미숙한 그 분야에서 오히려 용납하기 힘들 정도로 자기 주장만 내세우면서 때로는 각료나 전문가와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정책을 추진했다.'고 비판했다. 체임벌린은 자신의 대외정책에 찬성할 사람만 주변에 두길 원했으며, 유화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했던 보수당 의원들은 아예 정부에 들이지도 않았다. 해럴드 니컬슨은 1938년8월26일 자신의 일기에 체임벌린 총리에 대해 이렇게 썼다. '체임벌린은 세계정치가 뭔지 전혀 모른다. 그렇다고 그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의 충고를 듣는 것도 아니다.'. 노동당의원 중 한 명인 휴 돌턴은 체임벌린이 외교경험이 별로 없고, 잘 속아 넘어가는 데다, 아는 것도 없을 뿐더러 체임벌린 자신처럼 자질이 부족한 고문을 경험, 명민함, 지식을 갖춘 사람보다 선호한다.'고 평했다. 이를테면 체임벌린은 히틀러와 협상을 하러 가면서 외교부 고위관료는 한 명도 대동하지 않고, 국제관계 분야가 아니라 산업분쟁 분야의 전문가인 호러스 윌슨경을 데려갔다. 체임벌린의 잘못은 그가 영국 국경 너머에 대해 훨씬 깊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보다 본인이 대외정책을 더 잘 이해하며, 오로지 자신에게만 독재자들과 건설적인 관계를 수립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능력이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총리 한 사람의 손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증명하는 사례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만일 정부 수장이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는 정도가 지나쳐서 누구와 상의하든 자신의 믿음이 강화되기만을 원한다면, 그는 자기 기만과 착각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대외정책은 충성스러운 보좌관들의 도움을 받는 한사람의 리더가 결정할 분야가 아니어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어설픈 몽상은 위험한 망상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도자의 무지(無知)와 무식(無識)은 그 자체로 흉기입니다.
같은 책에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독재정권에서든 민주주의에서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리더는 시간이 갈수록 본인의 판단력에 스스로 탄복하면서, 정부 내부에서 나온 반대 의견은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약하다고 인식되거나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옳다, 우리만 옳다는 자만이 우리 집권자와 집권당에 팽배해 있습니다. 이런 '자만증후군'이 결국 혁명을 부릅니다. 국가와 국민의 비극은 여기서 비롯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