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들의 나라

by 권태윤

먹고살만한 세상이 된 지 오래임에도, 人心은 갈수록 흉포(凶暴)해지고 시퍼런 처벌의 칼날은 날마다 더 날카롭게 벼립니다. 밥 굶지 않는 세상임에도, 우리의 탐욕은 풍선처럼 자꾸만 부풀어 오르고, 더 강한 처벌의 핏기 서린 망치가 地天에 난무합니다.


더 사악해지고, 더 간교해진 범죄가 사람의 몸과 마음을 해치고, 더 예리하고 더 몰인정한 사법의 칼과 망치가 정의와 여론의 이름으로 칼춤, 망치질을 해뎁니다. 이 살벌한 세상에 누가 사랑을 생각할 것이며, 누가 아이를 낳을 것이며, 누가 자식을 키울 것인가 싶습니다.


그런데도 위정자(爲政者)들은 도리어 자기 탐욕의 실현에만 앞장서고, 혈세를 공돈으로 포장해 뿌리며 표를 구걸하는 매표행위를 서슴지 않고, 나라야 어찌 되건 자신의 부귀와 영화(榮華)만을 위해 굴종과 아부를 서슴지 않으니, 이 나라에 어찌 미래가 있다 하겠습니까.


일자리를 빼앗긴 젊은이들의 좌절과 절망을 보면서도, 더 많은 탐욕을 위해 울타리를 치는 어른들은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대기업 노동자만의 울타리를 더욱 견고하게 다지며 자기들만의 성채(城砦)를 쌓는노조의 주장은 용인할 수 있을까요. ‘이생망’ 외치며 절규하는 젊은이들의 ‘영끌’, ‘빚투’를 보면서도 도리어 그들의 미래를 빼앗아 빚잔치를 벌이면서도 수치심을 모르는 위정자들은 용서받을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우리가 왜 이 모양이 되었습니까.


우리의 빈곤한 영혼, 타락한 양심의 빈틈을 다시 촘촘하게 메워야 합니다. 배금주의(拜金主義)에 물든 우리 마음에 인문학적 소양(素養)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시 가르쳐야 합니다. 타인의 불행에 아파하는 마음(惻隱之心),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羞惡之心), 타인에게 양보하는 마음(辭讓之心), 선악과 시비를 판별하는 마음(是非之心)을 다시 배양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다시, 어질고, 의롭고, 예의를 지킬 줄 알며, 더 지혜로워야 합니다. 이제는 앞만 보지 말고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찬찬히 보살필 시간입니다. 주먹은 가깝지만, 마음이 더 가까워야 합니다. 그게 사람사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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