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어가는 존재이므로, ‘잘 사는 일’과 ‘잘 죽는 일’은 결국 같은 일입니다.
출생할 때 시간을 오래 끌면 산모도 괴롭고 지켜보는 가족도 고통스럽습니다. 마찬가지로, 죽을 때 시간을 오래 끌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고통스럽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잘 죽는 일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의 웰다잉 선구자인 스콧 니어링(1883~1983)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마무리는 아름다웠습니다. 스콧 니어링은 몸에 이상이 생기자 치료를 거부하고 스스로 곡기를 끊고 딱 100세가 되던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헬렌 니어링도 남편이 죽은 지 8년만인 87세에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가까이서 그런 마무리를 봤습니다. 외할머니는 당뇨로 병석에 누워있던 아들(외삼촌)보다 결코 오래 살지 않겠다며 스스로 곡기를 끊고 또렷한 정신상태로 가족들과 일일이 작별인사를 나누고 삶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오로지 목숨이 붙어있기 위해 하는 연명의료는 환자에게 가하는 잔인한 형벌(刑罰)입니다. 온전한 정신상태에서 환자 자신이 선택하는 죽음의 시기야 말로 ‘존엄한 삶’의 시작이자 끝이란 생각입니다.
우리 국회도 조속이 '조력자살'을 합법화 하면 좋겠습니다. 생명은 존엄하지만, 족음도 존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