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는 왜 존재할까요? 그들은 무슨 이유로, 무슨 목적을 위해 존재할까요? 단순히 종족을 보존하려는 ‘욕망’ 때문에 변이를 거듭하며 존재할까요? 어쩌면 그들은, 지구생태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일종의 ‘청소부’ 역할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인간의 대량 사멸, 조류와 가축의 적정량 유지를 위해 신이 보낸 사냥꾼은 아닐까요?
예수가 탄생한 지 1년이 지난해에 세계인구는 2억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통계를 내기전 시절이라 정확하진 않을 겁니다. 세계인구가 10억 명을 넘어선 때는 그로부터 1803년이나 지난 1804년이었습니다. 그런데 123년만인 1927년에 20억 명이 되었습니다. 1959년 30억 명이 되었고, 1974년 40억 명이 되었습니다. 1987년 50억 명이 되었고, 1998년 60억 명, 2011년 70억 명이, 작년말 기준 82억3천만명이 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1시간당 9천여 명이 증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학기술 문명은 지구를 망가뜨리지 않고도 80억이 넘는 인구가 높은 수준의 삶의 질을 누릴 수 있게 해줄까요? 영국 리즈대의 경제학자 대니얼 오닐(Daniel O'Neill) 연구팀이 과학저널 <네이처 지속가능성(Nature Sustainability)>에 소개한 답변은 간단하면서도 우울한 한마디 `No!' 였습니다.
세계인구는 이번 세기말까지 최대 40억 명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합니다. 유엔은 2050년 97억, 2100년 112억을 예상합니다. 국제 생태발자국 네트워크(Global Footprint Network)에 따르면, 모든 인류가 프랑스인처럼 살려면 2.5개의 지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프랑스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기준으로 할 경우 지구상 적정인구는 30억 명입니다. 지금보다 50억명 이상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인 것이죠. 미국인의 생활 방식을 기준점으로 설정하면 15억 명까지 줄여야 합니다. 우리 한국인의 라이프 스타일대로 살려면 지구 3.4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22억 명으로 줄여야 합니다. <인구폭발>의 저자인 미 스탠퍼드대 진화생물학자 폴 얼리크(Paul R. Ehrlich)가 지난 1994년에 계산한 세계 적정인구는 15억~20억이었다고 합니다. 얼리크가 선택한 목표는 5가지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알맞은 부와 자원, 기본권을 누리고, 문화 및 생물 다양성이 보장되며 지적, 예술적, 기술적 창의성이 발현되는 상태.
2005년 보건복지부가 한국인구학회에 의뢰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적정 인구는 4600만~5100만 명입니다. 국토도시학계에선 9가지 변수(구매력 기준 GDP, 경제 통합률, 교육 수준, 영어 사용률, 에너지, 육지, 온도, 수자원, 교통 거리)를 고려해 2300년까지의 한국의 적정인구는 4350만~4950만이라는 추정치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2011년 보건사회연구원이 추정한 적정인구는 4300만~5000만 명이었습니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는 적정인구를 ‘4000만 명대 초반’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저출산을 걱정하며 아이를 낳으라고 돈을 퍼붓고 있을까요? 1%대도 안 되는 출산률로는 ‘적정인구’ 조차 방어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 때문입니다. 저출산이 이어지고 시간이 흐려면 인구는 줄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수가 일반화 되는 또다른 공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국 생활방식, 삶의 규모를 줄이지 않고 인구 수로 지구를 유지하려는 욕망은 인간들만의 헛된 욕망이 아닐까요? 그것을 징벌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신의 대리인과 싸우는 어리석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