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자동차관리법> 검토과정에서 어처구니가 없었던 부분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국토교통부가 자동차관리법 리콜관련 조항에서 제조사 측에게 주장한 것이, “결함이 없다는 것을 너희가 입증하지 않으면 너는 유죄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속된 말로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네가 죄가 없다는 것을 네가 입증하라”는 ‘변사또 판결’과 다름없는 주장이었습니다.
영어 ‘알리바이(alibi)’는 라틴어 ‘알리우스 이비(alius ibi)’가 줄어든 말인데, ‘alius’는 ‘다른’이란 뜻이고 ‘ibi’는 ‘장소’란 뜻으로 ‘alibi’는 ‘다른 장소에’란 의미입니다. 결국 “알라바이를 증명하라”는 것은, “그 장소에 없었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현장부재증명(現場不在證明)’이 아니라, “다른 장소에 있었다”는 ‘타소존재증명(他所存在證明)’이라야 정확합니다.
‘악마의 증명(devil's proof)’이란 말이 있습니다. 어떠한 사실이나 인과(因果)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법률적으로 본다면 ‘입증책임(立證責任)’에 관한 용어입니다.
법률 소송상에서 입증책임이 있는 자가 이를 증명하지 못할 경우 법률적 판단에서 불이익, 즉 패소의 위험(패소의 부담)을 부담합니다.
왜냐하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증거만 대면 되지만,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모든 가능성에 대하여 증거가 없음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은, 하나의 것이 아니라고 하면 또 다른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 보라고 하는 과정이 연속됩니다. 없다는 것에 대한 증명은 끝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없다는 것을 없다고 증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것을 '악마의 증명'이라고 하고, '무지에 호소하는 오류(논증)'라고도 합니다. 결국 악마의 증명이란 '증명할 수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아주 비합리적인 논리 과정입니다.
국회나 정부의 입법 과정에서도 이런 부분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살펴야 합니다. 어떤 사실이나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해야 하는 ‘악마의 증명’ 논리로 몰고 갈 것이 아니라, 어떤 사실이나 인과관계의 존재를 주장하는 측이 입증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사의 상식이요, 입법의 상식입니다.
선거를 앞두고도 온갖 음해와 모략, 술수가 판을 칩니다. “네가 죄가 없다면 네가 증명하라”며 온갖 의혹을 퍼뜨리고 비난하는 몰상식한 행태가 흔합니다. 어처구니없습니다. 상대의 유죄(혐의)를 입증할 책임은, 지목하는 당사자에게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반드시 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공적 존재에 대한 의혹 제기가 일정 부분 용납된다고 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