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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군 Sep 17. 2023

이인삼각 달리기

넘어져도 네 탓을 안 할 수만 있다면...

철 지난 게임이긴 하다. 

연예인들의 이인삼각 하는 모습을 여전히 가끔 텔레비전으로 보게 된다. 

둘이 나란히 서서 한 사람의 오른 다리와 다른 사람의 왼 다리를 묶는다. 

두 사람이 세 개의 다리를 가진 한 몸이 되어 걷고 달린다. 

서두르고 허둥대다가 열에 아홉은 자빠지고 구른다. 

일부는 제 분에 못 이겨 화를 내다가 게임을 포기한다. 

문득 결혼생활과 오버랩이 되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키도 다르고, 다리 굵기도 다르고, 보폭도 다르고, 걸음의 속도도 다른 두 사람이 한 다리씩을 내어 자발적으로 묵었다. 

그리고 함께 잘 걸어보자고 다짐하고 하나 둘 하나 둘 호기롭게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내 멈칫한다.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래도 언짢은 마음을 누르고 괜찮다는 혼잣말을 하다가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다. 

다시 발이 엇갈리고 휘청거리고 바둥대다 넘어진다. 

발목은 아프고 손바닥은 쓰리다. 

신경질이 나고 울화가 치민다. 

내 미숙함은 잊고 상대방을 탓한다. 

내가 상대방의 보폭과 속도에 맞추지 못했다는 생각은 휘발되어 없어진 지 오래다. 

단지 상대방이 나를 배려하지 않고 멋대로 걸어서 이 사달이 났다고 속으로 비난한다. 

투닥투닥하다 상한 마음으로 다시 일어서보려 하지만 일어서는 것은 더 어렵다. 

그대로 포기할 것인지 어떻게든 일어나서 다시 걸어볼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혼자 걸으면 너무도 쉽고 편하고 효율적이다. 

둘인데 한 사람처럼 걸으려니 어렵고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상대방의 보폭과 속도를 잘 배려하여 걸으면 소소하고 풍성한 재미가 있다. 

잠깐 넘어져도 잘하면 서로 의지하여 일어나는 쾌감의 순간을 맛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잘못에 눈감는 본능에만 충실하다 보면 서로 네 탓만 하다 파멸의 결과를 맞게 될 수도 있다. 

이게 이인삼각이고 

이게 결혼이다.

나 또한 잠깐 이성의 끈을 놓고 보니 어느새 이인삼각을 하고 있었고 

또 잠깐 번뇌의 동굴을 헤매고 나니 다시 이렇게 홀로 걷게 되었다.

이제는 이인삼각의 불편함을 너무 잘 알고 홀로 걷는 게 무척 편안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그렇기에 다시 스스로 내 발목을 다른 사람의 발목과 묶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인삼각을 할 때의 그 다이내믹한 감정의 변화들이 삶을 풍부하게도 하지만 풍비박산 내기도 한다. 

홀로 걸을 때의 그 단조로운 감정들이 삶을 무미건조하게 하지만 만족스러운 편안함을 주기도 한다.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할 수 없다. 

내 딸에게조차 어느 한쪽을 추천할 수 없다. 

다만 어떤 선택이든 그 결과로서의 행복과 고통을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미 확고히 결심했다. 

이번 생에는... 다시는... 이인삼각은 하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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