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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군 Sep 25. 2023

밥 한 그릇에 대한 고마움

지구인으로서의 반성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여다본다. 

외식이나 배달음식 비호감족으로서 간단하게라도 요리를 하다 보니 하루에 적어도 두어 번은 음식물 쓰레기통을 열고 닫는다. 

대개는 순간 숨을 참고 음식물 쓰레기를 넣은 후 재빨리 뚜껑을 닫는다. 

그런데 오늘은 숨을 잠시 더 오래 참고 그 안을 들여다봤다. 

그래도 다행히 먹다가 남겨서, 혹은 먹기 싫어서, 혹은 오래 두어 상해 버린 음식이 없다.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오늘 갑자기 음식물 쓰레기통을 한참 들여다본 것은 음식에 대한, 더 나아가 식량에 대한 생각을 해본 탓이다. 

먹을 게 너무 흔해진 세상이다. 

너무 먹을 게 다양하고 많아서 영양 과잉이 문제고 버리는 음식이 문제다. 

딸아이도 밥을 먹다가 배가 부르면 밥을 그대로 남기고 일어선다.

한 입 먹고 맛이 별로이면 자기 그릇으로 가져갔어도 더 이상 먹지 않는다.  

'밥 남기면 벌 받는다'는 고전적인 겁박이 먹힐 리도 없다.

'보릿고개'에 관한 할머니의 증언도 별 감흥이 있을 리 없다.

나중에 사회적인 지식과 개념을 탑재한 어른으로 자라 스스로 깨우치기를 기도할 뿐이다.    

아직도 기아에 허덕이는 많은 나라가 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프리카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참 불공평하고 신이 참 게으르다 싶다. 

한 곳에서는 배부르다고, 맛이 없다고 버려지는 음식으로 골치를 썩는다.

벌레 먹은 자국이 있는 과일을, 유통기한 하루 지난 빵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다.  

그렇게 미처 소비되지 못하고 중간에 버려지는 식량이 전체의 1/3이나 된다고 한다. 

지금 생산되는 식량으로도 현재 전 세계 인구의 2배는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도 지구 어느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렇게 음식을 낭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먹거리도 대량 생산되면서 비교적 손쉽게, 그리고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된 이유가 크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특히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불필요한 소비가 확실히 많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카트에 즉흥적으로 구입한 식재료들을 잔뜩 담고 음식 낭비의 공범인 냉장고에 이것들을 빈틈없이 채워 넣는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게 하루 이틀 열흘 한 달이 지나 많은 음식물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이 한심한 루틴을 보면서 속으로 뜨끔하는 사람 많을 거다. 

바쁜 세상살이에 이런 것까지 꼼꼼히 챙기는 것이 쉽지는 않겠다. 

그러나 내가 먹지도 않고 버린 이 음식이 누군가가 간절히 원했으나 먹을 수 없었던 것일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내가 누군가의 생명줄을 끊는 데 일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에 다다르면 음식 낭비 문제는 허투루 넘기기 힘든 일이다. 

지구인으로서, 

지각 있는 지구인으로서,

이제는 내 밥상을 한번 반성해 볼 일이다. 

또한 '재미로'만 먹는 일, '배불러도' 먹는 일, 그리고 '생각 없이' 먹는 일도 지양해야 할 것이다. 

밥을 반 공기 담고, 반찬 두 가지를 정갈히 2단 나눔접시에 놓고, 국 한 공기를 뜬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 밥그릇 옆에 가지런히 놓는다. 

나를 위한 저녁 한 끼가 준비되었다. 

오늘따라 소박한 이 음식들이 더 고맙다. 

나에게 큰 어려움 없이 주어진 이 식사 시간이 감사하다. 

오늘도 반찬 하나 남김없이 깔끔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흠...

익혀놓고 보니 싱거워 꽃소금을 조금 더 넣었던 양파장아찌 맛이 이상하다...

많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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