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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새 Apr 16. 2022

흔한 집

30분 1글 #1

  코로나의 끝이 보이는 봄, 낮 시간 길거리는 간만에 하교하는 아이들이 곳곳이다. 골목마다 “XX야, 잘가”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근심 없는 목소리는 드디어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봄이 왔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알리기라도 하듯 낭랑하다. 골목골목 핀 벚꽃은 딱딱한 아스팔트에도 봄의 흔적을 흩뿌린다. 길고 긴 겨울 같았던 코로나를 잘 넘겼다는 안도감이 얼굴에 꽃이라도 피운 것처럼, 햇볕을 받는 동네 할머니의 표정이 밝아, 그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지나가던 애기 엄마를 붙잡고 안부 인사를 묻는다. 덕분에 동네가 한결 누그러진다.



  하지만 봄이라고 모든 이들에게 따스함을 선사하지는 못한다. 학교가 방학을 해도 나머지를 하는 아이들은 있기 마련. 이 동네 어느 골목에는 아직 봄의 기운이 가닿지 못한 2층집이 있다. 그것은 비단 집 모퉁이 전신주에 매달린 표지판이 낡아서만도 아니었고, 이유를 알 수 없이 담벼락 위에 걸려있는 간판이 쌩뚱맞아서도 아니었다.


  이 집에는 마당을 한껏 뒤덮고 있는 나무가 한 그루 있다. 마당을 뒤덮다 못해 전신주 위 전깃줄까지도 닿을 정도로 높은 나무였는데, 가지들이 하나같이 앙상했다. 앙상한 가지들이 마치 거미줄 치듯 오밀조밀해 2층집 너머로 걸린 하늘이라도 쳐다볼라 치면 걸리적거리는 게 너무 많았다. 나뭇가지 듬성듬성 있는대로 쪼그라든 나뭇잎들이 걸려있었는데, 겨울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메마른 연갈색을 하고 있었다. 분명 집 안쪽으로는 빨랫대, 장독과 같은 것들이 사람이 산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고, 심지어 대문은 깔끔한 원목으로 된 정갈한 문이었지만, 나무가 주는 겨울과 같은 기운을 이겨내진 못한 모양새였다.


  그래서 혹자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채로 이 골목길에 들어섰다가 겨울의 기운에 지레 놀라 움츠러들곤 했는데, 그런 움츠러듦은 사실 우리가 세상을 잘 몰라서일 수도 있다. 모두가 축하하는 입학식 속에서 앞으로의 등록금을 걱정하던 그 아이처럼, 앞으로 좋아질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재개발 계획서 위로 토해내던 그 사람의 기침처럼, 모든 기쁨의 물결 속에도 누군가가 혼자 감당하고 있을 슬픔은 항상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 지음 피드백 (같은 주제로 같이 쓴 지음의 글 링크 https://brunch.co.kr/@cinemansu12/4)


'나머지'가 '2층집'을 의미하는 것인지?

메마른 연갈색, 표현이 좋다!

마지막 문장이 감성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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