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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Apr 16. 2022

모퉁이 그 집

30분 1글 #1

증가로 29길 39. 북가좌사거리에서 명지대에 이르는 골목들에는 빌라와 2층집들이 서로 섞여 있다. 많은 2층 집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집을 팔고 그 곳에 빌라 혹은 원룸을 새로 올려 집장사를 하거나 아니면 다른 업자에게 부지를 팔고는 한다. 서까래를 흉내낸 콘크리트의 양식과 2층 베란다의 난간의 모습을 봐서는 다른 집들이 집을 팔 동안 크게 수리한 부분 없이 세월을 지내온 집의 모습이 보였다. 나무로 된 대문만이 집의 다른 부분들과 다르게 비교적 근래에 만들어진 듯한 색깔을 가졌다.


마당에는 가지가 앙상한 큰 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주변에 작은 나무가 한 두 그루 있다.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하는 시기임에도 가지에 새 잎이 돋아나지 않는 것을 보면 한참 시간이 지나야 움틀 수 있는 나무 종류인 것 같다. 그 옆에는 넝쿨 줄기로 뻗어가는 작으 나무가 있다. 낙엽이 붙어 있는 큰 나무와 다르게 그 작은 나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분간이 안 간다. 보통의 마당 있는 가정집에서 기를만한 나무라고 하면 포도나무일테니 그것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 한다. 넝쿨이 엉키게 받쳐주는 나무 판대기들이 포도나무가 있는 다른집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그것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골목 모퉁이의 한 켠을 차지한 집을 'ㄴ'자로 길은 둘러싼다. 증산역으로 가는 2차선 도로로 갈 수 있는 방향의 길목에는 이 집에 예전에 인테리어 업을 햇을 것 같은 흔적이 있다. 집에 비해서는 그렇게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연식의 간판이 담 뒤에 바로 있는데, 인테리어 장사를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대충 집의 어느 구석에 치워 놓은 것인지 알아보기가 애매하게 담장 뒤에 걸쳐 있다. 간판 옆에는 폐 자재들이 몇 개 있는 것으로 봐서는 지금도 이릉ㄹ 하시는 듯 하기도 하다. 


아직 새 잎이 나지 않은 나무들 때문인지, 페인트 칠이 다 벗겨진 난간 대문인지 집에 사는 사람들이 집을 잘 안 돌보나 싶을 때 쯤, 2층 곳곳에 걸린 빨래를 볼 수 있었다. 따뜻하고 볕이 좋은 봄날을 맞아 널려 있는 빨래들은 2/3가 수건이다. 비슷한 간격과 가지런히 널린 빨래들을 봐서는 살림을 도맡아 하시는 분의 성격을 대강 추측할 수 있었다. 한국의 가정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단 쇠난간에는 세로 봉 사이사이에 수건이 걸려 있었고 그 옆을 끼고 돌면 건조대에 많은 빨래들이 널려있다. 그 사이에, 2층 베란다 콘크리트 난간 위에 운동화가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



- 작은새 피드백 (같은 주제로 같이 쓴 작은새의 글 링크 https://brunch.co.kr/@4eeeac81451f407/14)


나보다 직접적이고 가치 중립적인 묘사를 디테일하게, 잘 해내는 게 지음의 강점인 것 같다. 나무를 보고는 생각이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하는...'의 추론에까지 가 닿은 것도 좋은 것 같다. 다양한 추론들(간판 옆에는 폐 자재들이 몇 개 있는 것으로 봐서는 지금도...)과 겉모습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비슷한 간격과 가지런히...)이 인상에 남는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제목이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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