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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새 May 09. 2022

그렇게 살 거니

값: 오천구백원

엘리와 만난 월요일, 헤어지기 전에 한 권에 오천 원, 세 권에 만 원 하는 손바닥 크기만한 책을 나 하나, 엘리 두 개 해서 샀다. 집에 와서 책을 보니, '값: 5,900원'이라고 적혀 있다.


누가 너더러 오천구백원이라고 하던.

너를 만든 제지공장 김씨 아저씨의 투박한 손길은 천 원, 너와 네 형제자매들을 실어나르는 일용직 고등학생의 땀 맺힌 어깨도 천 원, 너를 써준 백석씨에 또 천 원, 아무개에 오백 원, 오백 원...

네가 만 글자 정도로 이루어져 있으면 네 글자의 무게는 하나당 0.59원이겠구나. 200쪽 되니, 쪽 당 29.5원이구나. 그런데 백석 시인의 사랑 자야는 "1000억원이 그(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 했다고 하더라.

아니면, 나와의 생활을 시작으로 겪어갈 네 삶이 오천구백원이니. 그런데 사람들은 네가 팔리면 팔릴수록 더 값싸질 거라고 얘기하더구나. 네가 많은 일을 겪으면 겪을수록, 전 주인의 흔적이 네 모습에서 보일수록, 너는 값싸질 거라고.


그래서 너는 오천구백원의 삶을 살 거니.

너를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오천구백원만큼 감사하고, 세월이 갈수록 값싸지고, 한 글자에 0.59원으로 팔면서 살 거니.

사람들이 널 그렇게 팔 테니 그렇게 살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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