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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새 May 15. 2022

한나 아렌트 #6 - <라헬 파른하겐> 리뷰

인간, 사회, 관계

이 책은 한나 아렌트가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의 역사적 토대에 대해서 깊게 사유하기 시작하게 한 연구의 결과물이라고 들었다. 특히 한나 아렌트는 몇 세대 앞서 살았던 유대인인 라헬 파른하겐Rahel Varnhagen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전체주의와 반유대주의에 유대인으로써 어떻게 서야 할지를 많이 생각했다고 했다. 두 여성은 시대적으로 떨어져있었지만, 세계에 만연하던 반유대주의라는 '전통'은 동일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이 연구를 통해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서 사유하기 시작했는지, 어떤 연유로 라헬 파른하겐이 한나 아렌트 마음에 닿았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책과 마찬가지로 한나 아렌트의 개인적인 판단이 들어간 서술이 많았다(한나 아렌트가 쓴 평전류 글들의 공통점인 것 같다). 대개 평전은 평전의 주인공에 대한 말들이 많기 마련인데,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말들이 차지하는 분량이 아주 많다. 한나 아렌트는 라헬 파른하겐 외에도 수많은 주변인의 이야기를 비중있게 다룬다. 라헬 파른하겐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갑작스레 등장하는 형태로. 게다가 한나 아렌트나 라헬 파른하겐이나 말을 길게 늘여서 하고, 한나 아렌트는 거기에 개념적 어휘들을 끌어다 쓰는데, 그걸 역자가 그대로 번역했다보니 이해하기에 쉽지 않은 텍스트였다.


(그런 부분들이 너무 잦았기에 좀 말들을 더 한국어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려운 사상가의 텍스트를 그런식으로 번역하는 것은 크나큰 확신과 실력, 그리고 과단이 없으면 어려운 일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이런 인기 없을 것이 예상되는 텍스트를 번역하며 보수를 받아봐야 얼마 못 받지 않았을까 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니 번역에 집중하기 어려웠을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다시 번역이 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런 전반적인 어려움 때문인지, 혹은 라헬 파른하겐의 삶이 생각보다 단조로워서인지 내게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진 못한 책이 되었다. 책을 읽기 전, 내 최대 관심사는 라헬 파른하겐이 결국 벗어나기 어려웠던 반유대주의에 맞서 본인의 삶을 어떻게 개편했고, 그 이후의 삶이 어떠했는지 등의 것들이었다. 실제로 라헬 파른하겐이 출세의 길과 본인의 정체성(유대인) 사이의 갈등을 본격적으로 인식한 것은 45-50세 사이인 것 같은데, 그때부터 사망하기까지의 기간이 거진 20년이 됨에도 불구하고 책에는 단 2장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정체성에 관한 인식을 바꾼 뒤, 사회적으로 크게 행동한 바는 없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가 '반유대주의'와 이에 따른 '좋은 결혼'에 대한 당시의 압박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즐겁다. 그녀에게 찾아온 변화들은 때때로 일시적이고, 다시 예전의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쳐다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그녀가 좌충우돌하면서 결국은 '진보'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녀와 사회와 관계들이 셋이서 치열한 길항작용을 펼치는 광경이 지극히 인간적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조금 풀어서 설명해보자. 라헬 파른하겐이 살았던 시기, 그녀가 살롱을 운영할 수 있었던 좋았던 시절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유럽에는 반유대주의 정서가 흐르고 있었다. 당시 이런 것에 민감한 유대인들에게 흔히 주어지던 해결책 중 하나는 좋은 결혼을 통해 사회에 동화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이런 과정들은 그녀와 사회 사이의 갈등을 초래했다. 종종 그녀의 사랑은 파국으로 끝났다. 여동생의 결혼을 세상에 대한 증오 속에서 축하해야 했다. 가족들이 그녀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감내해야 했다. 나중에 결국 결혼에 성공해 동화되었던 때마저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가 미처 버리지 못했던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모욕해야만 동화에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들 속에서 한나 아렌트와 마찬가지로 우정을 중요시했던 그녀는 보켈만, 마르비츠와 같은 사람들(인상적이었던 두 명만 언급하자면)을 만나며 스스로를 바꿔나간다. "보켈만은 세계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음을 발견하도록 그녀를 도왔다."(한나 아렌트, 『라헬 파른하겐』, 104p) 마르비츠에게는 "살고, 사랑하고, 공부하고, 근면해지고, 기회가 온다면 결혼을 하"고, "사소한 모든 것을 중요하고 살아 있게 만"들라고 조언한다. "그건 신뢰할 수 있는 진실한 과정이고 어느 누구도 당신이 그렇게 하는 걸 막지 않을 거예요."(이상 같은 책, 204p) 그러면서 "그녀의 절망은 더는 그녀 자신의 사적인 일이 아니"(같은 책, 212p)라는 것을 배우게 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과정이 혁신적이고 놀랍고 거대하지는 않다. 때때로는 깨달음 이후에 다시 반복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 또한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한 그 밤이 지나자마자 다음 날 아침, 나도 모르게 그 깨달음을 배반하고 관성이라는 이름의 열차에 몸을 싣는 경우가 있다. 그녀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그에 대해 인식하지는 않으/못하며) 인식의 틀을 바꾸고 주조해나가는 부분들이 좋았을 뿐이다. 그런 관계들이 부러웠고,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결과를 부러워하기보다는 그녀가 끊임없이 시도했던 우정을 닮아가길 바라야 할 것이다. 그에 따라서 운이 좋을 경우 따라왔던 관계들이 내가 부러워한 결과였을 것이니까.


나에게는 이 정도의 책이었다. 리뷰가 느낀 바보다 장황해지지 않게 하려고 책 내용을 많이 설명하지는 않았다. 책 내용을 조금이나마 훔쳐볼 수 있는 필사 모음은 아래의 브런치 글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brunch.co.kr/@4eeeac81451f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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