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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새 Jun 10. 2022

골목길에 얼룩이 번졌다

서대문구 구석의 한 골목길, 얼룩이 번졌다.


공용주차장을 둘러싸고 있는 벽은 공사한지 몇 년 안 되어 보이는 새하얀 색이다. 그러고보니 선거용 차량이 돌아다니며, 이 공용주차장이 본인의 공이라며 자랑스레 떠벌리던 것이 떠올랐다. 공용주차장 입구 양옆으로 정갈하게 쌓인 상자들과 일반쓰레기 봉투가 보인다. 오늘은 서대문구 쓰레기 버리는 날인가보다. 건너편 신축빌라에서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건장한 남자가 한 손에는 하얀 일반쓰레기 봉투를, 한 손에는 밝은 연갈빛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나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을 건데 상자를 미리 접어서 부피를 최소화했다. 그 앞을 꼬마 하나가 지나간다. 한 손에 분홍빛 스크류바가 들려있다. 어머니가 다려주셨는지 하얀 학교 제복의 깃이 제법 뻣뻣하다. 하루를 마무리하려는 참새들과 재잘거리는 중학생 여자아이들 몇의 목소리가 도시 소음 사이로 듣기 좋은 배경음악이 되어준다. 그리고 그 풍경 가운데, 얼룩이 번졌다.


공용주차장 입구 한 편 일반쓰레기를 버리는 바로 앞에서, 어두운 형체가 꾸물댄다. 정갈하게 청소된 거리와, 잘 정돈된 하얀 일반쓰레기 봉투들과, 뻣뻣하던 하얀 와이셔츠의 깃들과, 티없이 해맑은 여자아이들의 재잘거림 사이에서 그 얼룩 같은 형체는 어두워서 더 눈에 띄었다. 누군가가 신발끈을 동여매고 있다. 어두운 색의 모자와 어두운 색의 긴팔 면티와 어두운 색의 바지와 어두운 색의 신발을 신고 까만 비닐봉지를 양손에 든 채 신발끈을 묶고 있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짙은 회색빛 아미캡을 깊게 눌러쓴, 50 즈음 되어 보이는 남성의 얼굴은 높게 올린 깃과 짙은 수염 사이에 숨었다. 해를 등진 채 신발끈을 묶으려고 허리를 90도도 훨씬 넘도록 꺾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그이의 얼굴에 그늘이 졌고, 때문에 그이의 얼굴이 좀 탔다는 것만 겨우 알 수 있었다. 짙은 국방색 면티는 배쪽이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 더 검었다. 등쪽 면티는 알 수 없는 얼룩이 져있었다. 그러고보니 아미캡 한쪽에도 자전거 체인을 만지면 손에 묻는 기름때에서 볼 수 있는 묵직한 검은색의 얼룩이 있다.


무엇이 그리 오래 걸리는 걸까, 거의 몇 분이고 이질적인 거리 한 가운데서 신발끈을 묶고 있다. 족히 10년은 넘게 돌려입어졌던 것 같은 카고바지 아래로 때탄 파란색 신발끈이 보인다. 얇은 고무호스로 된 고무 신발끈을 묶고 있다. 어디서 주워왔을 것이 분명한 고무 신발끈을 쓸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신발이 밑창만 남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남았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애초에 밑창이 신발이었을 것이다. 그 위로 드러난 짙은 회색 양말은 거리에 보이는 짧아진 팬츠들이 맞이하는 계절이 무색하게 두꺼웠고, 그 두꺼움 또한 무색하게, 왼쪽 양말은 이미 네 발가락이 다 보일 정도로 구멍이 크게 패여있었다.


스크류바를 들고 가던 꼬마가 걸음을 멈칫한다. 꼬마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번, 그 아저씨를 한 번, 그리고 나를 한 번, 다시 길거리를 한 번 쳐다본다. 꼬마는 스타랙스를 타고 지나가던 아저씨의 찡그린 표정, 아무것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지나가는 학생들의 표정, 무탈하게 흘러가는 평일 오후에서 답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꼬마가 어정쩡하게 발걸음을 돌려 다시 그 아저씨쪽을 쳐다본다. 한 두 걸음을 용기내 옮기는 것 같다. 아저씨에게 무어라 말한다. 하지만 그이에게는 사람들의 찡그린 표정도 아이의 조심스러운 관심도 애시당초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듯, 처음 자세 그대로 파란색 고무 신발끈을 묶는다, 묵묵히.


그런 반응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꼬마도 다시 가던 길을 갔고, 스타랙스도 지나갔고,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건장한 남자도 이미 집에 들어갔을 게 분명해진 시간이 지나서야, 그 사람은 허리를 폈다. 허리를 펴자 면티에 묻은 얼룩이 더 선명하게 어둡다.


왜 얼룩은 항상 어두울까. 왜 때가 끼면 짙은 회색빛을, 그게 더 심해지면 검은빛을 뗘야만 하는 걸까. 우리가 좋아하는 신축 건물은 햇볓에 밝게 빛나는 대리석으로 되어 있을까. 왜 새로 지은 공용주차장의 벽은 그렇게 새하얀 것이야 했을까. 아이의 와이셔츠는 왜 하얀색이어야 했을까. 지나가던 중학생 여자아이들의 목소리는 왜 그리 밝았을까. 차라리 이 세상 모든 얼룩과 때가 다 밝았더라면 달랐을까. 그랬으면 꼬마 아이는 아무 생각 없이 길을 지나칠 수 있었을까. 스타랙스를 타고 가던 아저씨는 그이를 찡그리며 쳐다보지 않는 것이 가능했을까. 서대문구 구석의 한 골목길에 얼룩이 번지는 일은 없었을까. 그 사람은 이질감 없이 무탈한 우리의 오후에 녹아들 수 있었을까.


그이는 허리를 피자마자 어디를 둘러보지도, 자신을 훑고 갔던 시선들에 답을 하지도 않고 곧바로 발걸음을 옮긴다. 다리가 불편한지 무릎을 피지 못하는 목각인형 걷듯이 걸음을 옮긴다. 신축건물 옆으로 난 골목으로 사라진다. 다시 거리가 깨끗해졌다. 선거용 차량이 "저를 구의원으로 뽑아주신다면"으로 시작하는 밝은 미래들을 그리며 지나간다. 잠시 후 내가 그 사람이 서 있던 장소를 다시 돌아보았을 때, 그이의 발자국이 남은 것을 보았다. 그이가 서있던 아스팔트 위에 발자국이 소복이 찍혀있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하얀 발자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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