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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새 Apr 08. 2022

그녀와 눈과 과자와 열대의 햇볕에 관한 이야기

내가 콜롬비아에 있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그녀를 처음 좁은 인도 위에서 마주쳤다. centro comercial(쎈뜨로 꼬메르시알 - 대형 백화점/마트) Unico에 가는 인도였다. 왕복 1차선 도로 양 옆으로 난 인도는 두 명이 나란히 걸으면 타인의 통행이 불가능했다. 그 인도는 centro comercial이 밀집된 지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사람이 항상 많았다. 자주 사람끼리 길을 막아섰다. 왕복 1차선 도로가 막히듯 인도가 막히는 것은 진풍경이었다. 그 좁은 풍경 위에 그녀가 서있었다.


그녀는 등 뒤에 어린 아이를 업고, 한 손에 두 남자 아이를 데리고 서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열대의 햇볕에 그을린지 오래였다. 어려보였다. 두 남자 아이는 초등학생의 천진함과 개구짐을 얼굴에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탕을 사달라고 했다. 나에게도 눈을 마주치며 사탕을 사달라고 했다. 날이 무더웠다. 그녀가 내미는 사탕은 눅진해져 있었다. 나는 좁은 길 위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와 아이들의 온기를 가까스로 피해 그 길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나의 황망한 발걸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 뒤에 오던 이들에게 사탕을 사달라고 말했다.


그 뒤로도 그 길에서 그녀를 몇 번 더 마주쳤다. 기껏해야 내 동생 나이는 되었을까 싶은 그녀의 눈을 맞이하기 어려웠다. 눈을 둘 곳을 못 찾아, 그녀의 손 언저리에 있는 아이들을 쳐다보곤 했다. 그 중 큰 아이와는 몇 번 눈을 마주쳤다. 그 눈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때론 나를 편견 없는 아이의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가로수 옆에 앉아 먼 곳을 쳐다볼 때에는 내 눈이 보지 못하는 저 먼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1년에 한 번 있는 축제의 기운이 거리를 잠식하자, 그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거의 매일 같이 퍼레이드가 열렸다. 동네 어린 아이들은 춤 경연에 나가거나 축제를 즐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축제를 즐기는 쪽은 아니었지만, 공원에서 경연이나 퍼레이드 연습하는 이들을 보고 싶어 저녁시간 공원을 어슬렁거렸다. 과자 같은 걸 사러 centro comercial Unico에 가기도 했다. 그녀의 사탕은 잊은 채로.


축제의 광란이 가시고 스콜이 찾아오는 여름이 다가오자 내가 묵던 집 주인은 새 가정부를 구했다. 거기서 다시 한 번 그녀를 만났다. 등에 업은 아이 때문에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기분 탓인지 그녀는 전보다 야위어보였고, 묵묵히 일을 했다. 집주인들은 그녀의 일 맵시에 흡족해했고, 자주 바깥으로 돌아다녔다.


어느 날, 잘못 산 과자를 반품하러 가려다 일하고 있던 그녀를 보았다. 그녀에게 과자를 건넸다. 사양하길래, 잘못 산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잘못 산 과자까지 거절하진 않았다. 그 뒤부터 나는 다양한 이유로 그녀에게 과자를 건넸다. 내가 자주 사먹던 초코가 듬뿍 묻은 과자들이었다. 간혹 과자를 거절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대개 고맙다며 과자를 주머니에 넣었다. 한 번도 그 자리에서 과자를 먹지 않았다. 저대로 집까지-그녀의 집은 한 시간도 더 넘는 거리에 있었다- 과자를 가져가면 열대의 햇볕에 초코가 녹을 게 분명했다.


하루는, 집을 나서려고 거실을 지나쳐 현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세탁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였다. 그날도 그녀에게 초코가 한껏 발린 과자를 건넸다. 그녀는 내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집주인의 옷가지들을 손빨래하고 있었다. 그 날은 그녀에게 말동무가 필요했던 것 같다. 과자를 받아들더니 이내 그녀의 말문이 터졌다.


그녀는 대학에 가고 싶었고, 동생들을 뒷바라지해야 했고, 어느 작은 마을에서 도시로 와야만 했고, 도시엔 의지할 친구나 친지가 없었고, 일이 끝나면 곧바로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했고, 때로 집주인이 약속한 시간에 오지 않아 나가는 시간이 늦어져 스트레스가 많았다. 내가 오래 있던 나라의 장학금 제도를 부러워했다. “저는 대학교에 들어가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 눈을 나는 똑바로 쳐다보았다. 왜인지 묻지는 못했지만,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일언반구 없었다. 가져간 과자가 녹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그 날 이후 우리 둘은 가까워졌다. 간혹 대화들을 더 했고, 그녀는 그때마다 자신의 처지 혹은 집주인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가까워지는 과정 속에서 그녀의 눈빛이 점점 내게 무언가를 요구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 방을 청소하며 내 과자들에 시선을 많이 둔다고 느꼈다. 그 눈빛은 내가 내 나라에서 누리던 것, 그녀에게 결핍된 것에 대한 무언의 원망 같기도 했다. 그 눈을 마주하기가 곤혹스러웠다.


어쩌다보니 그 무렵, 나는 다른 도시로 이동하게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간다는 언질을 하지는 않았다. 집주인들에게만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전날 밤에 가방을 싸고 당일 아침에 떠났기에 그녀는 내가 떠날 것을 미리 알지 못했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말문이 터졌던 날, 그녀의 눈빛을 보았던 날 건넸던 초코 과자 몇 개를 침대 옆 선반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     


이제 나는 내가 오랜 기간 있었던 나라로 다시 돌아왔고, 이곳에는 가정부가 없다. 그녀를 생각한 지도 너무 오래 전 일이었고, 오전에 포털 기사를 뒤적이다가 콜롬비아 대학생들의 시위 이야기를 보앗다. 그녀가 떠올랐다. 콜롬비아 대학생들은 공교육 재정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었다. 기사에는 한 학생이 부정부패 척결을 요구하며 콜롬비아 국기를 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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