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어수선해서 왔습니다

자유를 꿈꾸는 한 남자 이야기

by 조 경희

"마음이 어수선해서 왔습니다"


상아색 골프 점퍼에 고운 선의 남성분이

조심스럽게 들어선다.


필사하던 노트북을 옆으로 치우고

루이브스를 담근 러그잔도 한켠으로 비킨다.


40대쯤 보이는 남성은 앉으면서

한숨을 가볍게 내쉰다.


"20년을 살아온 아내가 있는데,

딸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


상담을 하다보면, 처음 꺼내는 언어로

이분의 삶이 그냥 알아지는 게 있다.


몹시도 진지했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삶의 무게가 묻어 있었다.

나는 어느 새 그의 이야기에 깊이 젖어 들어갔다.


그날은

사랑하는 딸을 위해 부인과 함께 하게 되었다.

그때 그녀와 한 공간에서 마주쳤다.

그 순간 그는 당황해

그녀를 등지고 빠르게 걸어가 버렸다.


그 후로 그녀와의 관계는 어색해졌고.

그녀가 연락을 받지 않은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힘들때 함께 해준 그녀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괴로워하는

그의 목소리는 진실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인과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는 섬세했다.


사랑하는 딸을 키우는 교육에서부터

인성적인 면, 청소등

꽤 깔끔하고 정성을 다하는 인품을 지닌 그였다.

서로 다른 면들을

그는 딸을 위해 참고 살았던 것 같다.


어느날 앞뒤가 꽉 막혀 정체된 자동차 안에서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자유롭고 싶다....


그는 그후로 혼자 살고 싶었지만

딸을 위해 독립하는 그날까지 참아야 했다.


나는 듣는 동안

나의 삶을 기억했다.

남편도 그처럼 자유롭고 싶어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미뤄둔 남자들의 무게감.

알아주지 않는 부인과의 덧 없는 시간들.

책임과 인내로 채워진 하루들.


그는 그 속에서 조용히 숨막혀 가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자유를 꿈꾸는 남자들의 애환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남편에게서 듣지 못했던 외도의 이유를

그에게서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살고 싶다.

나도 행복하고 싶다는

영혼의 절규였으리라.


나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알아주지 못해서...


그녀와는 인연의 고리로 만나

서로 힘들때 위로가 되어준

그 역할을 다한게 아닐까


더는 미련도 집착도 말고

서로의 길을 가는 게 좋지 않겠는지

슬그머니 말을 내려 놓고

그에게서 인정의 표정을 읽는다.


남편을 이해할수 없는 부인의 삶도

결국 돌아와야 할 그의 현실도

내 자리가 아닌것을 안 그 여성의 인생도

모두 이해가 되었다.


누구의 잘 잘못이라고 말하기 보다

그는 그저 자유를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외도는 단순한 욕망이라기 보다

오래 눌려 있던 삶의 질문 같았다.


어쩌면 그날 마주한 그 장면이

충분히 마음을 다했으니

이상이 아닌 현실로 돌아 와야 할 시간임을

조용히 알려주는 메시지는 아니었을까.


그를 설득하려는 마음보다

이해하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누군가를 위해 미루는 삶이 아닌

자신의 시간을 살아야 할 때가

그에게도 다가온 듯하다.


아직도 그는

자유가 무엇인지 찾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