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와 사는 엄마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로 하고 며칠을 궁리하면서 20대를 키우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마음속에는 아이들을 키우던 여전한 습관과 고집이 남아있다. 나의 아이들이 미덥지 못한 것이다.
내가 아는 20대와 사는 엄마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다 몇 개의 문항을 정리해서 우선순위를 정리해 물어보았다. 거창하게 설문지까지는 아니고 엄마들의 고민, 엄마들이 자녀에게 많이 하는 말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들이 자녀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당연하게도 운동을 하라는 거였다. 자녀의 건강을 걱정하고 자녀들의 불규칙한 생활습관을 걱정하는 말이 가장 많았다. 건강을 챙겨라, 일찍 자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물론 자립성 강하게 알아서 놔둔다고 하는 엄마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월등히 많은 수의 엄마들이 자녀들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 딸도 20대의 나이에 벌써 대사증후군을 걱정하고 있고 직장 생활하는 1년 동안 체중이 10킬로도 넘게 쪄버렸다. 아들은 배가 나오고 밤늦도록 무언가를 먹고 걸핏하면 피자를 시키고 콜라 1리터를 밤새 마신다. 빈 콜라병, 말라붙은 치킨 뼈, 라면 봉지, 빈 피자판, 사탕 껍질을 치우면서 아들이 나보다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게 된다. 그나마 딸은 건강검진을 하고 몸을 챙기려 애쓰는 시늉이라도 하고 있지만 아들은 병원은커녕 자신의 몸과 관련된 말을 듣기보다 싫어한다. 가능한 건강검진이라도 빨리 해서 심각한 상태일 대사증후군을 조절시켜야 할 텐데 걱정이다.
아들의 건강에 대한 한탄이 너무 길었다. 글을 쓰다 잠시 검색해서 당뇨에 좋다는 돼지감자즙을 구입했다. 아들이 먹으려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엄마들이 20대 자녀들에게 많이 하는 말로 돌아오자. 두 번째는 당연히 돈에 대한 것이다. 안정된 직장을 가지라는 거다. 돈을 많이 받으면 더 좋고. 돈을 모아라, 경제적 독립을 위해 노력하라 등 자녀가 독립을 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가지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20대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가 아직 완전히 독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럴 수 있는 준비, 그럴 수 있는 기반을 가지기 위한 노력을 하기를 바란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고 남자들은 군대도 다녀오고 그러면서 금방 25살이 넘는다. 그런데 25살이 넘고 보면 30살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26살은 세기말의 느낌이었다. 26살의 가을, 거리를 휩쓸던 낙엽 잎이 도로를 가득 구르던 26살에 굉장히 나이가 든 기분으로 처음으로 포장마차에 가서 꼼장어를 먹어보았다. 꼼장어는 맵고 탄맛이 가득했다. 그렇게 먹을 수 없던 비싼 꼼장어와 마신 소주 한잔은 너무나 쓰디써서 포장마차의 낭만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그리고 영원히 봄을 오지 않을 것만 같았었다.
돌아보면 아득하지만 그렇게 맛본 저녁의 시간이 그립다. 그 시간들을 날마다 밤늦게까지 게임으로 지새는 아들에게는 어떤 추억이 남을 것인가.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20대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 생활에서 부딪치며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일찍 자라는 말이다. 아파트는 좁다. 좁은 공간에서 누군가 잠을 안 자고 있으면 살아있는 인간의 웅성거림이 아무리 둔한 사람에게도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사랑하는 자식이 날밤을 새우며 하는 게임 소리는 아무리 익숙해지려고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아들은 게임을 혼자서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같이 편을 먹고 하면서 흥분해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거나 친구들의 소리가 새어 나오게 만든다. 아이들이 같이 팀을 만들려면 모두가 되는 시간인 한밤중이 아니면 안 되는 거 같다. 어떨 땐 저녁시간에 그 시간을 기다리며 잠을 자는 모양이니 말이다. 그러고는 도대체 언제 잤는지 모르게 새벽에 뻗었다가 아침에 뻗힌 머리로 멍한 몰골로 출근을 한다. 25살이 넘고부터는 차츰 더 몰골이 말이 아니다. 한심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저런 몰골로 출근해서 천사 같은 유치원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 것일까.
딸도 만만치 않다. 정리를 정말 안 한다. 딸이 산 옷과 입었던 옷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발 디딜 틈이 없어지면 나는 어쩔 수없이 심부름센터 직원처럼 세탁기에 넣을 옷, 드라이 맡길 옷, 옷장에 걸어놓을 옷을 나누고 그런 날은 세탁기를 세 번씩 돌리면서 딸의 옷을 정리한다. 그리고도 딸애에게 고마운 소리를 들어본 적은 별로 없다. 자기 물건이 어디갔나며 타박이나 구박을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나의 아들딸은 왜 그러는걸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도대체 나의 무엇이 문제였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그런데 평상시 하던 하소연이 아닌 50명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들으려고 노력하며 자녀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을 물어보며 느낀 점이 있다. 그것이 결과인지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녀에게 잔소리를 안 하는 부모일수록 자녀와의 관계가 원만하다고. 될 수 있으면 잔소리를 하지 말고 놔두라고. 그들의 자녀와 하는 것은 잔소리가 아닌 대화인 것이 신기하다. 어떻게 20대 자녀와 대화가 가능하다는 말인가라고 생각하다 나의 20대를 생각하니 나는 절대로 부모 말을 안 듣는 정말로 못된 아이였다는 것이 떠오른다.
그러니 지금에라도 자식에 대한 잔소리를 멈추고 자식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식의 힘듦을 알아주는 부모가 돼야 하는 것일까. 마음을 비우고 기대를 내려놓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것일까. 여전히 자신은 없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