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악수
간밤에 긴 꿈을 꾸었다.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친구를 만난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만나고 있었다면, 세상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누구보다 먼 사이로 남아, 이제는 기억할 리 없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면에서 나보다 뛰어났던 그 친구를 나의 직장에 스카우트하지 않았더라면.
직장 동료와 윗분들의 얘기를 조금은 귀담아듣기만 했더라면.
나의 이기심이 자초한 한순간의 선택이 그 뒤 나의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다.
그 친구가 들어오고 몇 달 뒤, 나는 오래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것도 내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최선이었다.
떠나기 전 친구와 나눈 마지막 차 한 잔은 너무 썼다.
너의 똑똑함을 조금 얻어 나도 똑똑해지면 어떨까 했던 크나큰 어리석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의 마지막은 전혀 따뜻하지 않은 질책과 원망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나는 떠났고, 들려온 친구의 소식은 화려했다.
그래도 친군데... 잘된 건데...
나의 귀와 마음은 괴로웠다.
그때의 나는 모든 것에서 배제된, 소외된 인간 같았다.
외출을 해도 누가 나를 알아볼까, 뒤에서 수군거릴까 마음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내가 살았던 그 세상은 소문도 무성했고 듣고 싶지 않은 말들까지 어느새 알고 있는 내가 되어 있었다.
시간은 확실히 약이 맞았다.
지병을 다 낫게는 못해도 급한 응급처치는 되었다.
못 견딜 만큼 힘들었어도 일정 시간은 나를 또 살게 하고,
또 다른 자리에 나를 세워 주기도 했다.
그러나 친구와의 일만 생각하고 살기 싫었다.
얼른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 심정으로, 마음의 방 한구석에서 의식적으로나마 그 기억을 지워 갔다.
일부러 먼 곳에 자리를 잡은 것도 그 이유였다.
그 후로 친구는 꿈으로 나를 찾아왔다.
꿈에서도 우리는 친하지 않았다.
깨고 나면 하루 종일 무겁고 마음이 처졌다.
이것도 시간이 약이었다.
언제부턴가 그 생각도 희미해지고, 나는 더 이상 친구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어제, 친구가 날 찾아온 것이다.
어제의 친구는 예전에 알고 있던 그 친한 친구의 모습이었다.
술을 마시며 남자 친구를 소개하는 자리였는데,
내일 낮에 우리끼리 점심이라도 다시 하자며 손 흔들고 헤어지는 꿈이었다.
꿈 해몽은 잘 모르지만, 내가 그 꿈속에서 너무나도 밝게 웃으며 친구와 얘기를 나누었다는 게 진짜 좋았다.
어쩌면 난 친구와 화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의식적으로라도 꼭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제는 편하게 보내줄 때도 되었어.
이제는 정말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아.
미안했다. 친구야.
나도 사실, 진즉에 이러고 싶었어.
내 욕심에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건 아닌지 많이 후회했어.
우리 이제 서로 편해지자.
이 나이에 아직도 이러면 남들은 속 좁은 인간이라고 욕하겠지?
나직이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너의 손에 잠시 악수를 청해 본다.
가슴 한편에 찌릿한 순간이 잠시 스치기도 하지만 좋다.
우리,
이제 정말 한 번 만나자.
친구야.
우리... 친구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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