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또 다른 얼굴

같은 밥상 위의 다른 마음

by 이 유림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남편과 종종 부딪히는 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밥상 차리는 걸 알면서도

꼭 그때를 기다린 것처럼 다른 일을 하러 가는 거였다.


이럴 때 얼마나 열이 오르는지 다들 알 것이다.

남편도 자신이 잘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인지 대답은 늘

“알았어, 안 그러면 되잖아”였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며칠 지나면 또 똑같은 일이 어김없이 일어나고 우리 사이에는 불편함과

어긋난 시선들만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을 가라앉히고 남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당신은 금방 밥 먹을 건데 다른 일이 생각나요?”

“그거 잠깐 하고 오면 밥 다 식어버리잖아”


그러자 남편은 정말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

“ 난 식어도 괜찮은데? 식어도 맛있게 잘 먹어. 진짜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알았다.

우리는 같은 밥상을 놓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당신에게 갓 지은 따끈한 밥과 국을 먹이고 싶어 했고,

당신은 내가 해 준 음식은 뭐든지 고맙게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게 식은 음식이라 할지라도 당신은 나에게 고마워한다는 소리로 들렸다.


남편의 그 마음을 아는 순간, 미안함이 슬며시 올라왔다.

그제서야 남편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사고의 존중과 배려.

이것이 내가 늦게서야 알아낸, 부부만의 배려법이었다.

‘내 방식대로 참자’가 아니라, 서로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하자는 뜻이다.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있었으면.

먹은 컵들은 바로 씻어줬으면.

샤워하고 바닥 물 한 번만 정리해 줬으면.


사소하지만 마음 상하기 쉬운 일들이 집안 곳곳에 널려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먼저 일어난 당신이 안방 문을 조심스레 닫고 나간다는 걸.

거실의 TV 소리 볼륨을 제일 작게 낮춘다는 걸.

어제 신은 신발의 흙을 털어놨다는 걸.

급하게 벗고 던져둔 외투를 옷걸이에 걸어두었다는 걸.


무심하게 넘겼던 당신의 배려들.

너무 당연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의 시선들.


나만 인내하고 산 것이 아니었다.

당신의 눈높이로 보면 나란 사람도 충분히 걸리적거리고 답답했을 것이다.


서로를 위한 배려를 각자의 자리에서 하고 있었음에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서로의 배려를 알고 있었다.


오늘도 남편은 점심 밥상을 앞에 두고서 청소기를 들고 작은방으로 잠시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편안하게 수저를 먼저 든다.


당신은 늦게 찾아와도,

식지 않는 밥을 먹는 사람임을 알기 때문이다.


서로의 눈높이로 바라본다면

배려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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