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웃어요!!
엄마, 웃어요. 웃어!
장모님, 웃어봐요!
에이, 이번에 또 NG다.
장모님이 안 웃어서.
사진을 찍어주려다 말고
남편이 실망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 장모님, 사진 처음 찍는 교(경주 사투리)?
돌부처처럼 표정이 그게 뭡니까?
모처럼 딸하고 사위하고 벚꽃놀이 왔는데
기분이 안 좋은 교(경주사투리)? ”
남편은 실실 웃으며 농담을 건넨다.
“왜 안 좋아. 이 사람아. 좋고, 말고지.”
그제사 엄마도 멋쩍은지 희미하게 웃는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엄마에게 최강 웃음 처방을 써 보기로 한다.
손주들이 오는 날이 D-day다.
우리 집 웃음 필살기
여섯 살, 두 살 손주의 재롱이 최종병기다.
엄마도 안 웃고는 못 배길걸. 히힛
이럴 어째?
두 살배기 손자의 짝짜꿍, 도리도리, 잼잼 재롱에도.
여섯 살 난 손자의 어설픈 노래와 깜찍한 율동에도.
엄마는 잠깐씩 눈웃음을 보이시다가
무심하게 바라볼 뿐
그다지 소리 내어 웃지 않으신다.
‘ 엄마는 웃음을 잃어버리신 걸까? ’
틈만 나면 혼자 방으로 가서 누우신다.
말수도 확 줄었다.
잔뜩 웅크리고 모로 누운 엄마의 굽은 등을 바라보니
짠하고 불쌍하다 싶다가도
딸의 마음을 몰라 주는 엄마 때문에 슬그머니 속상해진다.
낮잠을 주무시는 것 같지는 않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 노랫말보다
더 기구한 여든다섯 엄마의 일생을 떠올려본다.
엄마 나이 갓 오십에 남편을 암으로 잃었다.
가난과 맞서며 4남매 건사하느라 슈퍼우먼이 되어갔다.
여자 몸으로 논농사와 밭농사를 형벌처럼 지어야 했다.
일흔 넘어까지 남의 집 일을 억척스럽게 하셨다.
자식들 다 고만고만 사는데
넘사 스럽다고, 제발 그만 쉬시라고.
아무리 말려도 귓등으로 들으셨다.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뚱아리. 놀면 뭐 하노.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부모가 못나서 변변히 물려준 재산도 없는데, 늘그막에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살아야지.
내 병원비라도 벌어 놔야지.”
돈! 돈! 돈!
하시다가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하신다.
몸이 고장 난 자동차처럼 말을 안 들을 때가 되자,
일을 놓으셨다.
이제는 일을 안 하니까 더 아프시단다.
심심하고 재미없어 못 살겠다 하신다.
뭐야, 일 귀신이 쉰 것도 아니고
인생 참 모순덩어리다.
엄마는 나만 보면 동네 아지매들 근황 브리핑이다.
S엄마는 뇌졸증으로 쓰러져 이십 년째 안 죽고 있어서, 자식들 고생시킨다는 이야기.
네 동기 D엄마는 치매 걸려 요양원에 갔다가 며칠 전에 죽었다는 소식,
J 엄마는 요새 치매 증상이 보여서 자식들이 경로당에도 안 보낸다.
온통 아픈 사람 이야기, 죽은 사람 소식뿐이다.
‘ 나도 곱게 죽어야 하는데…’
노래 후렴구 같은 엄마의 혼잣말로 브리핑은 끝이 난다.
기승전- 죽음이다.
그런 걸 자주 보고 듣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 다음은 내 차례인가? ’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긴긴 밤 잠은 어떻게 청할까?
불안한 잔상들이 엄마에게서 웃음을 빼앗아 가고 있는 걸까?
‘휴유~ 답 없다. 답 없어!’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온다.
“ 장모님, 장모님.”
남편의 활기찬 음성이 들려온다.
“우리 운동하러 가요?
장모님, 소원대로 안 아프고 죽으려면 운동이 필수입니다.
그렇게 자꾸 누워만 계시면 안 돼요. 안돼!
모래밭 맨발 걷기가 건강에 그렇게 좋다네요.” 허허
십여 분을 걸어 바닷가로 나왔다.
엄마는 몇 발짝 걷더니
“아이고! 다리야.”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는다.
또다시 멍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신다.
바다야, 파도야,
우리 엄마! 어떡하면 좋아?
아무튼! 엄마,
웃어줘요. 당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