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기차여행
오랜만에 무궁화호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봄철에다 주말이라 그런지 기차는 만석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알록달록 꽃처럼 곱습니다. 표정도 활기차 보입니다.
기차는 같은 칸에 탄 사람들끼리 칙칙폭폭 소풍 가는 것처럼 정겹습니다.
도란도란,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좌석 너머로 들려옵니다.
사람 사는 냄새가 솔솔 나서 흐뭇합니다.
느리게 가는 기차에는 왠지 순딩순딩 착한 사람들이 타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혼자 가는 여행이라 말동무가 없어 적적합니다. 두리번두리번 주위사람들을 살펴봅니다.
“여기 제 자리입니다.”
“총각이 자리 좀 바꿔 앉으면 안 될까요? 우리 둘(육십 대 친구 사이로 보임)이 일행인데 기차표가 매진되어 따로 앉게 되어서요. 히히.”
“제가 창가를 좋아합니다.”
새까만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청년은 무표정한 얼굴로 딱 잘라 거절합니다.
아주머니는 더 이상 부탁을 안 합니다. 얼른 일어나 앞 좌석으로 순간 이동합니다.
나란히 앉게 된 아주머니와 청년 사이에 어색한 기운이 잠시 감돕니다.
‘뭐야? 자리 좀 바꿔 줘도 되겠구먼! 일행도 없으면서 ’
청년의 태도가 좀 야박하다고 여겨집니다.
몸을 쭉 내밀어 청년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습니다.
청년은 고개를 거의 90도로 꺾은 채 창밖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테이크아웃 해 온 커피 빨대만 쪽쪽 빨면서 말입니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도 눈을 살짝 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잠을 자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까 거절당한 무안함을 삭이고 있는 걸까요?
기차는 사람들의 이런 마음 저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기적소리를 내며 달려갑니다.
‘무궁화호 인심도 예전 같지 않네.’
코로나19란 놈이 한 삼 년 우리 곁에 착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많은 걸 바꿔 놓은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전염병 환자 보듯 피하도록 했지요. 마스크로 입과 코를 막고 대화도 못하게 길들였습니다.
코로나가 자취를 감춘 지 일 년이 지났네요. 그 지긋지긋한 마스크를 벗어도 사람 사이에 거리감은 여전한 듯합니다. 시끌시끌했던 무궁화호 분위기도 눈에 띄게 조용조용해졌습니다.
장소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저장하고 있는 보물창고라 했던가요.
코로나19가 덮치기 전에 대구에서 구미까지 기차 통근을 한 5년간 했더랬습니다.
무궁화호를 타면 자리 바꿔 주는 건 예사로 있는 일이었지요.
어떤 정 많은 할머니가 떠오릅니다.
딱 이맘때쯤입니다.
딸네 집에 쑥떡을 해간다며 먹어보라고 조금 나눠 주셨어요.
퇴근길이라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요. 할머니가 마침 대구에서 내린다길래 할머니의 짐을 내려드렸지요.
‘ 맛있어요. 고마워요. 어디까지 가요? 뭐 하세요? 잘 가세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옆에 앉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동무가 되었지요.
느리게 가는 기차여행의 지루함을 서로가 달래 주었답니다. 불과 몇 년 전인데 사람 사는 풍경이 코로나 전후로 많이 달라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콜록. 콜록. 콜록. 콜록.
기침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옵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요.
조금 전 청년 옆에 앉은 아주머니의 기침 소리였어요. 참아 보려 애쓰지만 어려운 모양입니다.
“나한테 물 있는데 이거라도 한 모금 마셔 봐요.”
통로에 입석으로 서 있던 오십 대 여자 승객이 자기 배낭에 꽂아 둔 생수병마개를 따고 물을 건넵니다.
아주머니는 물병을 받아 꿀꺽꿀꺽 마십니다.
다행히 아주머니의 기침 소리는 뚝 멈췄지요.
고맙다고 괜찮냐고?
서로 묻는 말들이 참 따스하게 여겨집니다.
아까 냉랭했던 분위기가 다시 훈훈해지는 느낌입니다.
청년은 이 상황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또 한 번 청년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습니다.
청년은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눈을 꼭 감고 있네요.
자리를 바꿔 주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눈을 못 뜨는 건 아닐까요?
순전히 내 생각입니다. 히히
‘ 아직 살아있네! 이게 무궁화호의 찐한 감성이지!’
이웃의 온기 어린 관심과 배려가 내 마음에 닿아 미소 짓게 만듭니다.
사람 냄새가 그리우면 무궁화호를 타고 종종 여행을 떠났다 오려합니다.
코로나19로 격조했던 사람들 마음에도 어서 빨리 봄이 오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