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꽃
유채꽃이 회색빛 도심에도 노랗게 봄을 그려 놓았다.
노오란 꽃잎과 연둣빛 꽃대가 생동한다.
봄이다. 봄! 봄!
환하게 웃으며 일렁인다.
' 안녕! 봄아, 올해도 어김없이 와줘서 고마워.'
인사를 다정하게 건넨다.
꽃들의 아름다운 위로에 겨울 내내 차갑고 건조한 마음이 꿀차를 마신 듯 노긋노긋해진다.
나이 들어가니 미래의 일 보다 옛 생각이 더 많이 난다.
내 유년시절 고향 마을에도 개나리, 진달래, 노란 배추꽃이 차례로 피어났었지.
그리움의 안테나가 오십여 년 전 고향의 봄으로 향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를 키운 건 5할이 자연이다.
시골의 명랑한 하늘과 다정다감한 구름, 바람소리, 철마다 피어나는 나무와 꽃들이 내 감수성의 엄마였다.
봄에 아이들은 참꽃(진달래꽃의 다른 이름)을 참 좋아라 했다.
연분홍 모습도 예뻤지만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꽃이라 그랬다.
친구들과 종일 밖에서 뛰놀다 보면 금방 배가 고파졌다.
아이들은 엄마 일 가시고 없는 텅 빈 집이 아니라 산등성이로 잽싸게 내달렸다.
따로 먹을 게 귀하던 시절 이야기다.
참꽃 잎을 토끼처럼 냠냠냠 따먹곤 했다.
참꽃 맛은 그냥 씀씀 했다.
이 꽃 저 꽃나비처럼 팔랑팔랑 옮겨 다니며 꽃잎을 따먹었다.
너나없이 입 주변이 발그스름해졌다.
그 모습을 마주 보며 까르르까르르 웃곤 했다.
진달래꽃처럼 여리고 해사한 미소를 닮은 아이들로 자라났다.
동네 어른들은 삼월삼짇날 전후로 화전놀이를 갔다.
리어카에 큰 양은솥과 새까만 솥뚜껑을 싣고 소풍 가듯 걸어서 갔다.
경치 좋은 곳에서 음식도 해 먹고 꽃도 보며 해가 지도록 놀았다.
본격적으로 고된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에 동네 사람들의 어울림 한마당이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마을 단합대회, MT였다.
아버지들은 강가에서 반두를 이용해서 물고기나 다슬기를 잡았다. 강가 자갈밭에 솥을 걸고 매운탕을 한 솥 가득 끓였다. 온 동네 사람들이 한 식구처럼 둘러앉아 한 그릇씩 뚝딱 먹어 치웠다.
엄마들은 달궈진 솥뚜껑에 들기름을 넉넉히 둘렀다. 기름이 자글자글 소리를 내면 하얀 찹쌀가루 물을 밥뚜껑 만한 크기로 동그랗게 그림 그리듯 부었다. 그 위에 붉은 진달래꽃잎을 하나하나 수놓듯 곱게 얹어 지져 냈다.
이름하여 화전이다.
이름처럼 고운 별미를 먹고 사람들은 꽃처럼 연하고 더 순둥 순둥 해졌다.
마을사람들은 가진 것은 없어도 정 많은 부자였다.
힘든 세상을 서로를 위하며 함께 어우러져 잘 살아냈다.
글쓰기를 참 잘했다.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새까맣게 잊어버렸을 기억이다.
가난해서 눈물겹지만 정이 넘쳐 살만 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그립고도 정겨우며 따스한 추억으로 재탄생되어 내게로 온다.
진달래꽃의 아련함이여, 벗들이여!
그립고도 그립다.
우리네 삶도
봄날의 꽃들처럼
평화롭고 순하게 흘러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