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미니멀리즘
얼마 전 비비크림이 하나 필요해서 앱으로 주문했다.
로켓배송 메시지가 떴다.
그리 급한 게 아니라 일반 배송으로 받으려 했으나,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업체의 시스템에 따라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데 비비크림이 문 앞에 떡 하니 와 있었다.
지극히 사소한 물건 하나가 누군가의 달디 단 새벽잠을 뺏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쓰는 돈의 편리함이 누군가의 힘든 노동의 댓가로 주어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 빠르게 더 빠르게 ’
우리 사회는 왜 이다지도 속도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걸까?
뜬금없이 예닐곱 살 때 배운 우화가 하나가 떠오른다.
「토끼와 거북이 경주」다.
“우리 달리기 시합해 볼래? ”
거북이를 만난 토끼는 다짜고짜로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한다.
‘저기까지 함께 가자.’가 아니라,
‘누가 이기는지 한 번 해보자.’ 식이다.
어린이들 마음에 경쟁과 비교를 은연중에 심어준 건 아니었을까?
모든 것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지 않은가.
토끼의 자만심보다는 거북이의 끈기가 중요함을 깨우쳐 주는 우화지만,
상황 설정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배달의 속도전 시대다.
총알 배송, 즉시 배송, 새벽 배송, 로켓 배송, 당일 배송이라는 신조어들이 난무한다.
우리도 빠름에 점점 길들여지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오는 쪽으로 손가락은 클릭한다.
그럴수록 업체 종사자들의 삶의 질은 더 나빠지고 안전은 위협받게 된다.
물론 빠른 것이 느린 것보다는 편리하다.
하지만 치러야 할 위험과 희생이 내재 돼 있지 않을 때 한해서다.
심심찮게 터지는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
음식 배달 라이더들의 사망사고 소식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인데도 마음의 통점이 느껴진다.
그들 또한 누군가의 가장이고 아들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불합리하게도 우리 사회 시스템은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일수록 수입은 적고,
사회 안전망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더 많다.
해외여행 중 보게 된 무질서 속의 질서의 나라,
베트남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노이 시내 오토바이 부대들의 출근길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들에게는 생활이지만 낯선 이방인들에게는 볼거리였다.
수많은 오토바이가 대열을 이루어 전진하면서도 접촉사고 하나 나지 않는다.
그들의 여유와 느긋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단 한 명도 먼저 가려고 속도를 내지 않고 반칙도 하지 않았다.
그저 흐름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음을 알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생각의 각도를 바꾸니 삶이 확 달라졌다.
'남은 인생 절반은 느긋하고 여유롭게 살아보자.'
57세의 나이에 속도경쟁에서 하차하기로 마음먹었다.
36년간의 교직 생활도 마감했다.
그즈음
사사키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책을 만났다.
'최소한의 물건만을 소유하며 단순하게 사는 삶'
미니멀리즘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 또 공감했다.
지금도 줄이는 삶, 비우는 연습 중이다.
많은 것을 버렸다.
물건도 욕심도.
버리고 버렸는데,
되려 마음에는 여백이 생겨났다.
매일매일 다정해져 가는 나를 발견한다.
그저 무탈한 하루에 감사하기만 해도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