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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운대 줌마 Jun 20. 2024

한 걸음 앞서 걷는 노인들의
아지트 경로당 이야기

아무튼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

“ 이장님은 늘 꽃밭에서 사시겠어요? ”

경로당에 들어서는 TV 프로그램 진행자의 첫 멘트다.     

 “ 헤헤헤헤 우리가 호박꽃 둘이라서 예... ” 

자글자글 주름진 얼굴에  손꽃받침을 한 할머니가 잽싸게 이장의 대답을 가로챈다.

당신이 말해 놓고서도 무안하신 지 더 크게 소리 내어 웃으신다. 

노인들의 얼굴에서 있는 힘을 다해 살아온 퀼트 무늬 같은 아름다움을 느낀다.  

   



심심풀이 화투 삼매경에 빠진 할머니들에게 바짝 다가가며 장난스러운 질문을 이어간다.     

할머니화투는 언제까지 치실 거예요?” 

화투장을 여상스레 톡톡 내려치면서

오늘도 치고내일도 치고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치지.”

진행자는 할머니의 대답이 프로그램에 재미를 충족한다는 표정으로 함박웃음을 머금는다.

그라믄 죽을 때까지 치시겠네요?”

할머니는 단박에 

 하머! ” 

한마디에 할매들 맞장구치며 까르르까르르 ......

단순한 즐거움에 퐁당 빠질 줄 아는 할매들이 지혜롭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장수한다는 통계는 경로당에 오면 여실히 증명된다.

여든 넘긴 할배들은 숫적으로 완전 열세다

경로당의 작은 방으로 밀려나 있다.

몇몇 분이 새우처럼 구부정한 등으로 조용조용 장기를 두고 계신다

말수도 드물어 있는 둥 없는 둥하다.

젊은 시절 할매들에게 군림하던 뼛속 깊이 유교 남자들의 위상은 찾아볼 수 없다

고개 숙인 남자들의 노년은 초라하고도 애잔하다.   

' 아~ 옛날이여를 속으로 외치고 계실려나?  '




할머니짝꿍 생각 안 나세요?”

“않나! 밥 달라는 영감도 없고 잔소리하는 인간도 없고 늙으면 혼자가 편해. 

 고스톱이 더 좋아. 쓰리고 때리면 좋아서 기절해!"

할매들 공감하며 

또 한 번 까르르까르르 웃음이 터진다. 

    

맞아나도 절대공감이다

그 시절 남자들사랑받기는 좀 글렀지

애정 표현이 뭔지도 모르고 애 줄줄이 낳고 살았지.

자상함과는 사돈에 팔촌쯤 거리가 멀었지.

친정아버지만 봐도 그랬어.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들도 그랬으니까   

대부분 할매들이 누이 같은 마음으로 참고 보듬으며 평생 살아주셨지. 히힛



 

요리조리 살피던 진행자의 눈이 할매들의 모습을 쭈욱 스캔한다.

할머니들머리스타일이 다 똑같네요? 같은 미용실 작품입니꺼?”

그려읍내 한 미용실 솜씨지.”

절대 절대 한 오백 년쯤은 안 풀릴 것 같은 뽀글뽀글 파마머리 스타일.

" 이 머리가 경로당 할미스타일인가요?." 

까르륵까르륵 

하얀 뽀글 머리 우리 할매들 잘도 웃으신다.     



가만히 보면 할매들 패션취향도 비슷비슷하다

꽃무늬 몸빼 바지 아니면 꽃무늬 조끼.

아이돌 유니폼처럼 한 두 가지는 입고 계신다

할매들이 애장 하는 필수 패션템인가 보다.

알록달록 촌스럽도록 화려한 꽃무늬. 

할매들에게도 한 때는 꽃 같은 청춘이 있었노라 대변하는 듯하다 


'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디를 갔느냐!' 

노래교실에서 여든을 넘긴 할배가 울부짖듯 절절하게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부르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찡해 온다.


   



우리 할매 할배들, 

죽을 때까지 십 원짜리 화투만 치다가 돌아가시게 한다면 삶의 질이 너무 떨어지잖아

노후를 재미있고 유쾌하게 보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보급이 필요해 보인다.

그분들은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분 한 분이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되어 주신 분들이다.

우리 동네 경로당에도 찾아오는 노래교실, 노인을 위한 요가나 요리교실

특히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 강연 등등     


노인 스스로도 당당하며 소외받지 않는 가족 공동체 형성

노인이 잉여인간, 이등 국민 취급받지 않는 사회 분위기 조성

노인도 함께 행복한 나라 만들기

늦은 감이 있지만

노인 존중과 배려의 문화 씨앗을 심고 가꾸어 나가야 할 때다. 

 

우리 보다 한 걸음 앞 서  걷는 노인들

우리도 그 길을 따라서 가야 하니까.

늙음은 누구도 비껴갈 수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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