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쿠, 아버님 산소 너무 덥수룩하네!’
올 여름에 비가 유독 많이 와서 그런지
봉분 위고 아래고 할 것 없이 풀들이 수북수북하다.
“아버님, 아버님 집 오늘 예쁘게 단장해드릴게요.” 히히
귀여운 너스레를 떤다.
위이잉~ 위이잉~
남편은 예초기로 조심조심 풀을 깎고
쓱쓱 싹싹
나는 깔구리로 베어진 풀을 끌어다 버리고.
한 이십여분을 작업하자
말끔한 봉분이 드러난다.
과일과 포,
잔을 올리고 절을 드린다.
아버님 무덤 앞에
남편, 나 셋이 정겨이 마주 앉았다.
"아버님, 간식 드세요. 히히
그리고 일주일 뒤에 저희 집으로 꼭 오세요.
맛있는 거 많이 해놓고,
아버님 보고 싶은 손주와 기다릴게요.
아버님 기일이잖아요." 히히히
세상 무뚝뚝했던 며느리가
다정함의 용기를 내어본다.
남편도 덩달아
"아버지, 우리 이사 간데 아시죠?"
부산시 해운대....(어디어디 )
"당신이 아버님께 작년에 알려 드렸잖아요." 히히히
"아버지가 일 년 지났으니 까먹으셨을까 봐." 크크크
남편의 입가에 멋쩍은 미소가 묻어난다.
산소에 오면 돌아갈 때까지
묵언수행이라도 하는겐지?
한마디도 안 하던
'우리 남편이 달라졌어요.'다
너스레도 떨고 실실 곰살 맞아졌다.
혹시 여성호르몬 탓?? 히히히
‘저이도 나일 먹으니 말이 많아지네?' 히히
사실 나도 아버님 살아계실 때는
완전 조신조신 고분고분 조선시대 며느리 같았다.
그때는 시아버지가 왜 그렇게
어렵고 쑥스럽고 조심스럽고 그랬는지?
너무 예의를 차리다 보니
다정함은 커녕
시아버님 얼굴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었다.
돌이켜보면
시아버님은 하나뿐인 며느리와
가끔씩 농도 던지시며
가까와 지고자 무진 노력하신 거 같다.
그럴 때마다
소리내지 않고 웃는 정도의 인색한 반응만 내보이며
쑥스러움을 잘타는 내가 선을 긋는 바람에
어렵고 불편한 시아버지와 며느리 관계로만 지냈었다.
시아버님 돌아가신지도 이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나도 며느리 둘을 보게 되면서
이제사
아버님의 그 다정한 마음을 조금씩 헤아려본다.
살아 계실때
다정하게 대해 드리지 못했던 게
가장 후회스럽다.
오늘은
애써 용기를 내어본다.
아버님 무덤가에서...
'우리 며느리가 달라졌어요.'다.
무뚝뚝하고 애교 없는 내가
조금씩 조금씩 곶감처럼 말랑말랑 마음
가을 햇살처럼 다정다정
따스따스해지는 이 느낌이 좋다.
이 모든 걸 전에도 알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