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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영원한 사랑은 없지만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1998), 하서출판사, 리뷰

by 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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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은 이 책의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어 보고 만일 사랑의 기술에 대한 안이한 교훈을 기대한 사람은 누구나 실망을 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와 같은 기대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 반대로, 사랑이란 인간으로서의 성숙 정도와는 상관없이 손쉽게 빠져들 수 있는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쓰여졌기 때문이다. (p.5)”


프롬은 되도록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 책을 작성하였다고 한다. 또한 문헌을 인용하는 빈도도 최소한으로 하려고 했다고 전한다. 프롬의 말처럼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 자체의 논의는 어렵지 않다. 오히려 프롬이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있는 말은 21세기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면에 익숙한 만큼 무뎌진 이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 우리에게 던져주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2장 〈사랑의 이론〉에서 프롬은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는 이러한 분리 상태를 극복해서 고독이라고 하는 감옥에서 탈출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는 데 결정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은 곧 광기를 의미한다. (p.20)”고 말했다. 프롬은 인간의 분리되어 있다는 경험이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며, 이러한 분리되어 있다는 경험이 모든 불안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이는 인간적인 능력의 단절을 의미한다고 했다.


또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각 개인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고, ‘일체성’으로서의 평등, 즉 ‘동일성’의 논리로 사람들을 억압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분리에 대한 두려움의 완전한 해답은 인간 상호간의 일치와 타인과의 융합, 즉 ‘사랑’의 성취에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프롬은 여러 측면에서 논의하고 있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사랑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흥미롭게 기술되어 있다. 프로이트가 왜 모든 것을 성적인 영역으로 보았나- 그건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유행한 자본주의 정신과 연관되어 있다는 지점이 그러하다. 절약에서 강조로 정신이 변화되면서, 물질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성적인 영역에서의 욕구 만족도 미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러 요소들이 있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지점은 사랑이란 강렬한 감정적 끌림이 아닌 어떠한 ‘행위’ 자체라는 점이다.


“사랑이란 자발적이고 정서적인 반응의 결과이며 억제할 수 없는 감정에 따라 다급하게 사로잡은 결과로 생각되고 있다. (…) 우리는 에로틱한 사랑의 중요한 요인, 즉 ‘의지’라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강렬한 감정은 아니다. 그것은 결단이요 판단이며 약속이다. 만일 사랑이 단지 감정에 불과한 것이라면 서로 영원토록 사랑하겠다는 약속의 근거는 사라져 버린다. 감정은 솟아났다가 다시 없어질 수 있다. 만일 나의 행위에 판단과 결단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어찌하여 이 사랑이 영원하리라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p.81)”


우리는 사랑, 특히 형제나 부모 간의 사랑을 제외한 에로틱한 사랑에 있어서 사랑이란 일시적이며 강렬한 감정이라고 여긴다. 특히 그 감정은 어떠한 성적인 충동을 수반해야 한다고 믿으며, 이러한 충동이 사그라들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마음이 변했다거나 식었다거나 하는 표현이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우리가 어떠한 사랑을 시작했을 때, 그것에는 의지- 즉 나의 결단과 판단, 약속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우리는 충동이 사라졌을 때 사랑의 소멸에 대해 슬퍼하지만, 사실 우리가 슬퍼해야 할 지점은 우리가 처음의 결단과 판단, 약속을 잊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 점을 인식하고 있다면 사랑이라는 의지적인 행위를 통하여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감히 할 수 있으리라. 프롬의 말대로 그렇지 않고서는 사랑의 영원성을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지만, 사랑의 영원성을 우리는 의지로써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의 기술의 실천에 필요한 것들



4장에서는 여태껏 다뤄온 사랑의 기술에 대한 이론적 측면이 아닌 사랑의 실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프롬은 4장에서 사랑의 기술에 있어서도 훈련이 필요한데, 이는 전생애에 걸친 훈련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루 8시간 이상씩 작업을 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프롬은 기술 습득에 있어 중요한 두 번째는 정신 집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신 집중이란 결핍되어 있는 문화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프롬은 책을 읽으며 라디오를 듣고, 이야기를 하면서 담배를 피고, 먹고 마시는 이러한 모든 소비 행위를 정신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보고, 이는 우리가 혼자 고독하게 있지 못한다는 점을 꼬집는다. 그리고 이어 인내, 최고의 관심들과 같은 요소들이 사랑의 훈련에 있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프롬은 어떻게 사랑을 훈련해야 한다고 보았을까? 프롬은 조상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불필요한 사치에 빠지지 않으며 열심히 일하는 것을 언급했다. 이는 외부적인 조건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대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한다. 정신 집중에 측면에서는 혼자 있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고 했고 이러한 능력이 사랑하는 능력에 대한 귀중한 조건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스스로 독립되어 있을 수 없는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집착하게 될 수 있는데, 이는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고 보았다. 프롬은 이에 있어 정신 집중 연습 – 명상하는 법과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경치를 바라보는 일 등에 집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또 프롬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신 집중하는 것 역시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는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민감해져야 한다. 민감해진다는 것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 왜 화가 나고 우울한지, 조바심을 느끼는지 등을 알아채는 것을 말한다. 신체적 감수성- 내 몸이 어떻게 아픈지 변화를 기울이는 것처럼 정신 상태에 대해서도 동일한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능력에 있어 중요한 특성들



이어 프롬은 사랑하는 능력에 있어 중요한 특성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요점 역시 흥미롭다. 프롬은 사람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즉 객관적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모든 형태의 정신질환은 극단적인 정도까지 객관적일 수 없는 무능을 보여 준다. 미친 사람에게 있어서 존재하는 유일한 실재는 그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며, 자신의 두려움과 욕망의 실재일 뿐이다. (p.159)” 프롬은 또한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는 약간은 미쳤거나 잠자고(꿈을 꾸고) 있다고.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겸손과 객관성, 이성의 발달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 전생애를 바쳐야 한다고 보았다. 즉, 프롬은 어떠한 인물에 대해서 자아 도취적으로 왜곡된 이미지와 나의 관심, 욕망, 공포 등과 관계없이 그 사람 자체의 현실적 차이점을 이해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사랑의 기술을 얻기 위한 절반을 도달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객관성은 세상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모든 타인에 대해 필요한 자세라고도 지적했다.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 있어 새로운 지점은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어떠한 자아 도취적인 경험을 부정하고, 의지적인 행위로서의 사랑- 객관적이며,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고, 상대와의 차이를 인정하는 결심과 약속이라고 보았다는 점이다. 사실 누구나 이러한 이상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있어서 사랑이란 하나의 소모품처럼, 일시적으로 끓었다 가라앉는 감정이 더 가치 있으며 그러한 충동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게 된 풍조가 지나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프롬의 책이 매혹적인 부분은 우리가 사랑을 ‘받기’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실 사랑이란 ‘주는’ 행위 자체라는 것을 말한다는 지점이다.


“사랑의 본성에 대해서 분석한다는 것은 오늘날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일이며, 이렇게 만든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회적 조건을 비판하는 일이다. 단지 예외적인 개인적 현상뿐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서 사랑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 자체에 대한 통찰에 기초한 합리적인 신념이다.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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