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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경 Mar 09. 2020

종현: 가만히 눈을 감고

2009년 어느 날, 종현의 목소리


나는 종현을 좋아한다. 종현을 좋아했던, 좋아하는, 추억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아마 2009년의 종현 목소리를 잊지 못할 것이다. 2008년 샤이니로 데뷔한 종현은 멤버들과 함께 2009년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특히 이 당시에 신인으로서 라디오에도 자주 출연했던 기억이 있다. '산소 같은 너'로 소위 말해 입덕해 샤이니를 좋아했던- 그 중에서도 종현이 최애였던 나는 당시 전자사전 라디오 기능으로 그들이 나오는 프로를 녹음하여 다시 듣기도 하고, 특히 라디오에서 라이브를 했던 음성은 따로 저장해서 mp3로 반복해 듣기도 했다.


종현이 라이브로 불렀던 음악들은 고스란히 나의 취향이 되었다. 그리고 슈가맨에 출연한 종현의 영상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어 유튜브를 뒤적이다가 일본 도쿄 팬미팅에서 2009년 당시 불렀던 한 음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워낙 예전이기 때문에 남아 있는 영상이 많지 않았지만, 감사하게도 좋은 음질로 보존되어 있었다. 일본 가수 히라이 켄의 원곡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가수 정재욱이 리메이크한 곡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곡은 내가 사랑하는, 그리워하는 종현의 그 시절 목소리가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아침이 와 눈을 떠보니

그대의 작은 흔적이 나의 곁에 있어


메마른 내 입술에 스친

잊었던 하얀 숨결이 차가워져


기억은 나누어지는지

어쩌면 부서진 채 사라질까


내일은 또 오게 되겠지

세상은 여전한가봐

그댄 어떤가요


언젠가 나를 슬프게 했던

그대 울던 얼굴

또 다시 나의 볼을 적시면


지워버리려고 기도했던 날들

내 마음이 내 눈물이

그대를 기억하고 있어


Your love forever



종현의 '가만히 눈을 감고'는 히라이 켄의 원곡과도 정재욱의 리메이크 버전과도 다른 결을 하는 특수성이 있다. 나는 단순히 가창력을 대결시키는 구도로 가수나 곡을 평가하는 것에 반대하며, 이 역시 그러한 의미는 아니다. 단지 곡의 감상에 대한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더 소년의 것이고, 힘이 있고, 직접적이다.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후자의 두 곡이 상대를 그리워하는, 거리감을 두고 회상하는 목소리라고 느껴졌다면 종현의 커버 버전은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듯하다. 샤이니 1집에 수록된 종현의 솔로 곡 '혜야'에서도 느껴지듯이 상대를 붙잡는 듯한 강한 목소리는 마음을 울리는 짙은 호소력이 있다. 이런 짙은 목소리 속에 흔들리듯 자리 잡고 있는 종현의 투명하고 연약한 감성이 너무나 아름답다. 


멜론에 기재된 샤이니 1집의 유저 리뷰에는- 정확한 워딩은 생각나지 않지만, 이렇게 어린 소년들에게 이런 노래들(1집의 수록된 절절하고도 가슴 아픈 노래들)을 왜 주었을까, 하는 댓글이 참 기억에 남았다. 당시 샤이니 멤버들의 나이는 굉장히 어렸고 특히 막내 태민은 중학생의 나이였다. 샤이니가 데뷔한지도 10년을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태민이 군대에 가지 않은 나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들이 얼마나 새파랗게 어린 나이에 데뷔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종현은 당시 열아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인지 모르게 기억하고 있는 장면은, 당시 샤이니 홍보용 리얼(?) 다큐에 종현의 교복이 걸린 숙소 장면이 나왔던 게 기억난다. 실제로 이때 민호가 교복을 입고 리허설을 섰던 영상을 떠올려보면, 정말 이러한 노래들을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어렸다. 그 앳됨과 풋풋함, 그리고 그들의 꿈과 노력, 종현의 독보적인 목소리가 담긴 2009년의 음성은- 그리우면서도 마음이 아프고 사랑스러운 기분에 휩싸이게 만든다. 아마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세계의 일부분이 되었을 것이다.


위의 영상의 묘미 중 하나는 한국말로 부르던 종현이 일본어로 넘어가며 노래를 부르는 부분, 이에 따라 미묘하게 변하는 온도차라고 생각하지만 온전한 라이브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래는 일본어 부분부터 부르는 종현의 남아 있는 당시 영상이다. 뾰족 머리에 화려하게 꾸몄지만(ㅎㅎ) 어딘가 서툰 느낌이 남아 있고 긴장한 듯한 자세와 종현이 이 당시 자주 했던 손짓들이 엿보인다. 몇몇은 이러한 종현이 노래를 부를 때의 목소리, 자세 등을 허세라고 여겼지만- 나는 이 넘쳐흐르는 감정이 너무나 좋았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종현을 독보적인 천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말이 온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만 천재라고 압축하기에는, 그는 상당한 노력가였다. 이 역시 정확한 워딩은 생각나지 않지만, 종현이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에서 본인 입으로 자신은 천재가 아니라며, 그렇기에 아주 많은 시간을 노래 연습을 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 같이 프로에 참여하고 있던 디어클라우드의 나인 씨는 "그 성실함이 바로 천재"라는 식의 말을 했었고 나도 이에 동의하기도 했지만(ㅎㅎ) 종현은 타고난 것뿐만이 아니라 정말 절실했고 성실했으며 많이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 2015년, 한 팬의 요청으로 다시 부르게 된 '가만히 눈을 감고' 일부


시를 좋아했고 시인이 되고 싶었던 종현. 나는 샤이니를 통해 종현을 알게 되었고, 샤이니를 좋아했고, 그 안의 종현을 좋아했지만- 결국에는 김종현이라는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가 소극장 콘서트 '유리병편지'와 관련하여 썼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우스워보일 수도 있지만(나는 팬에게 개방된 분향소에 방문했던 한 사람이었고, 팬이 아닌 다른 사람들로부터 약간의 비웃음이 섞인 눈빛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기자들의 무례함을 겪고 '팬인 나는 아주 잠깐 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공인들은 이게 일상인 걸까.'하는 감상에 잠기기도 했다.) 나는 그의 친구였다. 그리고 그에게도 우리가 한때 친구였기를 바란다. 


종현아. 참 많이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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