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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경 Jun 24. 2020

그냥 일기: 장마

2020-06-24 수요일


부슬부슬 1


오늘부터 장마의 시작이라는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SNS도 지워버리고 뉴스도 잘 보지 않는 나에게도 이동하는 시간 버스 안에서 듣는 라디오나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같은 것으로 오늘이 장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정인의 장마와 같은 노래들이 잊고 있었던 계절감을 떠올리게 한다. 올 여름은 아주 더울 것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비가 많이 와서인지 며칠을 제외하고는 아직 많이 덥지 않았다.


비올 때 좋아하는 풍경 중 하나인 우리 학교 농구 코트


나는 장마철을 좋아한다. 장마라는 단어의 어감이 좋기도 하지만, 여름에 내리는 비는 겨울과 다른 지점이 있다. 겨울의 비는 고요하고, 고요하다는 것은 정지 상태에 가깝지만, 여름의 비는 침묵과는 거리가 멀다. 장마는 소란스럽다. 부슬비에 몸을 떠는 나뭇잎들의 소리나 단단한 농구 코트를 때리며 내리떨어지는 빗소리 같은 것들. 차라리 여름 비는 환하다 못해 눈이 멀 것 같은 감각이다. 여름의 가로등이 반짝이면 죽은 벌레떼들과 흩어지는 비의 모양이 고스란히 보인다. 


부슬부슬 2


이런 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나는 여름을 많이 타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추위를 탄다는 감각과 다르다. 겨울을 탄다는 건, 정말 육체적인 고통에 가깝다면 여름을 탄다는 건 심리적인 탈진 상태에 가까운 것 같다. 여름에는 끔찍하게도 외롭고(이제 왜인지 외롭다는 말은 촌스러워진 것 같지만 다른 대체할 말이 없다.) 예전 일이 많이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아예 솔직해지려고 한다. 잠이 오지 않아서 휴대전화의 배터리를 꺼버리는 것처럼 약을 먹고 억지로 잠에 드는 밤에 대해서. 내가 병원에 가서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불안하다고 토로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하여. 사실 나는 알고 있다. 


모든 잠들지 못하는 여름 밤은 사랑받지 못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단순히 친구나 연인이나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 애정을 받지 못했던 것은 잠시다.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건, 정말 돈이 없었던 물질적인 가난 말고 영영 나아지지 않는 마음의 가난 같은 것이다. 나는 이제 서른에 가까운 이십대지만 아직까지도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여섯 살 정도의 어린 아이를 생각한다. 몇 년 전 아주 오래 살았던 집을 떠나면서, 이사 준비를 위해 방 청소를 하다가 어렸을 때의 일기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노골적인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적혀 있었다.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는 물음과 함께. 내가 잊고 있었던- 잊어버리려고 애썼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마주하자 몸서리가 쳐졌다. 나는 그 일기를 당장 버려버렸다. 두 번 읽지 못했다.


긱사 들어가는 길


우리 어머니는 어렸을 때 나와 동생과 함께 걷지 않았다. 항상 일행이 아닌 것처럼 몇 발자국이나 앞서 걷고는 했다. 그리고 어린 우리가 어른의 보폭을 따라잡지 못할 때마다 화를 냈다. 우리에게도 화를 내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화를 내고 어머니는 아주 날카로워져 있었고 우리를- 나를 부끄러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그 창피함과 치를 떨 정도로 나를 싫어한다는 생생한 느낌- 내가 조금만 살갑게 굴면 '왜 친한 척을 하느냐.'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을 받기도 했다. 타인 앞에서 나를 노골적으로 경멸하기도 했고 어머니의 규칙을 지키지 않아서, 마음에 들지 않아서, 혹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심정으로 많이 혼났고 많이 맞았고 그리고 많이 협박당했다. 이혼한 아버지에게 짐을 부쳐버리듯 보내버릴 것이라는 말은 어머니의 언성이 높아질 때면 늘 듣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지 않게 된 건 정말 참고 참았던 어렸던 내가 나와 내 동생은 짐이 아니라고 울며 비명을 질렀을 때였던 것 같다. 실제로 아버지의 새 가정에 가서 살았던 적도 있지만 그때의 기억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다만 돌아왔을 때 내가 당시 초등학생의 나이였는데도 용변을 가리지 못해 밤중에 이부자리를 더럽히고는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무서웠었다. 많은 것이.


학교가 서울이 아니라서, 커서, 좋았다


나는 사과를 받고 싶다. 이제 와서. 이제 와서라도. 물론 내가 어머니에게 사과할 것도 아주 많이 있겠지만. 

어머니는 최근 나한테 이런 말을 했었다. 꼭 태초부터 나와 함께한 것 같았다고. '어머니'로 살기 이전의 자신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자식이 운명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슬픈 말이다. 그 말은 어째서인지 내 가슴 속에 오래 자리 잡아 잊혀지지 않는 문장이 되었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와 오래 살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도 훨씬 짧은 기억이라 알게 되었을 때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둘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오래오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머리를 짧게 자르면 아버지와 똑같이 생겼다. 어느 날 아주 짧게 커트를 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며 나를 보기 싫어했던 어머니를 생각한다. 우리는 아마 둘 중 한 명이 죽기 전까지는 더욱 기나긴 시간을 함께할 것이다. 


이런 것이 운명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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